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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의학서를 읽으며
몸과 삶을 탐구하는 사람들
서울 ‘비별청탁’
모이는 곳
온라인 줌ZOOM, 서울시 창덕궁 근처 회원의 사무실
모이는 사람들
20~70대까지 몸을 공부하는 다양한 사람들
추천 도서
『팬데믹 시대에 읽는 동의보감 강의』 안도균 지음, 북튜브 펴냄
『대칭성 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펴냄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한문화 펴냄
『소통하는 신체』 우치다 타츠루, 오오쿠사 미노루 지음, 현병호 옮김, 민들레 펴냄
『위생의 시대』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펴냄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몸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상을 사는 게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 400년 전 의학서인 『동의보감』으로 몸과 삶을 탐구하는 독서동아리가 있다. 한의사가 되려는 분들일까 궁금했는데, 자신을 이해하고 더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인문의학을 공부하는 분들이었다. 건강한 생기가 듬뿍 느껴지는 ‘비별청탁’을 만나보자.
‘비별청탁’을 소개합니다
‘비별청탁’은 몸을 공부하기 위해 모인 독서동아리로, 2018년부터 매주 1회 15~20명 정도의 회원이 만나고 있다. 의학을 배우는데 중심이 되는 텍스트는 『동의보감』. 동아리 이름인 ‘비별청탁泌別淸濁’은 맑은 것과 탁한 것을 구별한다는 뜻인데, 소화기관인 소장이 음식물의 청탁을 구분하는 기능을 설명하는 한의학 용어이기도 하다. 독서동아리 모임도 삶에서 꼭 필요한 것과 기꺼이 흘려보낼 것을 잘 구별하자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이다.
‘비별청탁’은 2018~2019년 도담아카데미에서 인문의역학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구성원들 연령대가 20~70대까지 다양하지만, 주체적으로 사는 태도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있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우선 건강해야 하니까 몸을 공부하고, 몸과 연결된 마음이나 감정에 관한 이야기에 서로 귀 기울이다 보면 딱히 세대 차이는 느껴지질 않는다고.
인문의역학과 독서 토론
‘인문의역학’이란 인문학적 관점에서 공부하는 의역학인데, 한의학이 역학 이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의학을 ‘의역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의보감』을 읽다 보면 한의학이 몸과 세계의 연결성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한의학 체계 안에서는 의학과 역학이 하나의 분류 안에서 논의된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즉 우리 삶은 우리 몸이라는 장소에서 펼쳐지니까, 내 몸과 내 몸이 살아가는 세계를 공부하는 것.
독서 토론은 책 읽을 분량을 정한 뒤, 돌아가면서 발제를 맡는다. 발제는 책을 요약하고 자기 생각과 의견을 써와서 발표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토론하면서 새로 만든 방법은 키워드 공유하기인데, 각자 읽은 부분에서 핵심 키워드나 질문을 종이에 적어 화면에 공유한다. 발제가 끝나면 키워드나 질문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몸을 생각하는 특별한 모임
올해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해서 최대 5명까지 한 공간에서 모이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을 땐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했지만, 몸을 공부하다 보니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산책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대면 모임이 훨씬 즐겁다. ‘비별청탁’은 모임에서 먹는 간식도 좀 특별한데, 발제하는 주제에 맞춰 신장이 주제일 때는 신장 건강에 좋은 귤과 밤을, 당뇨 관련 발제일 때는 당뇨에 좋은 차를 마신다.
코로나19 상황이 괜찮았을 때는 약재 연구소를 운하는 회원이 있는 강원도 홍천, 또 다른 회원이 거주하는 강화도로 워크숍을 다녀오기도 했다. 만날 앉아서 책만 읽다가 하루를 꼬박 같이 걷고 명상하고 식사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홍천에서는 한방 양제 만들기 실습도 했는데, 책에서만 보던 약재를 직접 만지고 양제로 만드는 경험은 퍽 신기했다. 그때 약재를 보며 회원들끼리 농담을 나눈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약재도 특징이 다른데, 감초는 다양한 약에 들어가서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진피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좋아져서 오래될수록 비싸다. 회원들이 “너는 감초다” “나는 진피할래”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함께 약초를 공부하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암호처럼 느껴져 더 친감이 생겼다.
책의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고,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는 행운
혼자가 아닌 ‘함께 읽기’를 통해 각자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 노하우를 나누다보니 대화가 풍성해진다. 아로마테라피, 요가, 약초 연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상에서 책 내용을 실천할 지점이 더 보이게 된다. 무엇보다 서로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어서 좋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생각과 관점이 달라지고, 어떤 회원들은 새로운 진로와 삶을 개척하기도 한다. 큰 변화를 결심하는 회원이 생기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뻐한다. 이렇듯 회원들이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건, 함께 몸을 공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혹 주변에 몸과 인문의역학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학이 무조건 어렵거나 고차원적인 공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는 회원들. 물론 다른 사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공부라면 그렇겠지만, 그들은 내 몸과 삶에 대한 지혜를 구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한다. 몸과 삶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는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문제 아닐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내 몸을 갖고 살아가는 만큼, 자신을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공부하길 권하고 싶다.
★ 인터뷰 및 글. 이효선 독서동아리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