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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장 장흥에서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읊다
장흥 ‘詩간여행’
모이는 곳
전남 장흥 탐진강변에 자리한 8정자
모이는 사람들
시를 사랑하는 장흥 사람들
추천 도서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오민석 지음, 천년의시작 펴냄
『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뻐라짓 뽀무 외 34명 지음, 모헌 까르끼·이기주 옮김, 삶창 펴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도요새 요리』 최광임 지음, 북인 펴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장흥은 이청준, 한 승원, 송기숙, 이승우, 한강 등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다. 수많은 문인이 나고 자란 이곳 장흥에 시를 감상하고 낭송하는 독서동아리 ‘詩간여행’이 있다. 들판은 노랗고 하늘은 높고 강물은 빛나는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詩간여행’을 만나러 ‘장흥 8정자’ 중 하나인 ‘경호정’을 찾았 다. 화기애애 시끌시끌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인사를 하자 차부터 한 잔 따라준다. 말로만 들었던 장흥 전통 발효차 ‘청태전’이다. 장흥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시 사이를 여행하며
시의 간을 보다
장흥군에는 청소년회관과 노인회관이 있지만, 중장년을 위한 문화 시설이나 활동 공간은 거의 없다. 중장년을 위한 문화 활동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시를 감상하고 낭송하며 삶의 활력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화영 회원이 “좋은 사람들끼리 차도 마시고, 시도 읽어요.”라며 ‘차모임’ 사람들을 ‘시모임’으로 이끌었다. 장흥 차 ‘청태전’과 시가 어우러진 ‘詩간여행’의 탄생은 이토록 소박했다. 2018년의 일이다.
‘詩간여행’ 회원은 10명인데, 코로나로 인해 공간 대관이 어려워진 데다 중장년 회원이 많아 온라인 모임도 쉽지 않았다. 모임 장소를 찾아 떠돌다 만난 곳이 탐진강변을 따라 펼쳐진 ‘8정자’. 야외에서 모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탁 트인 자연에서 시를 읽으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정자에서 바라본 새까매진 하늘과 강물, 그리고 처마 끝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는 풍경은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시 사이間를 여행하다, 독자의 입장으로 시의 간을 보다’라는 의미를 담은 ‘詩간 여행’. 누가 제안한 이름인지 궁금해하자 백근화 대표가 “이런 건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그냥 툭툭 튀어나옵니다.”라고 말해 ‘경호정’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맞아요. 정말이에요.”라며 맞장구를 치는 회원들의 모습이 정답고 흥겹다.
시가 웅얼웅얼
튀어나올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끼리 차를 마시며 시를 읽은 지 3년 6개월. 오랫동안 시를 읽어 온 비결이 뭘까? 회원들은 “멋있는 우리 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 말문을 연다. 우리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백근화 대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칭찬을 주고받으며 동아리 자랑을 하는 회원들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성당도 못 가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소개를 받고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는 태동희 회원은 “시를 낭송하고 발표하면서 즐거우면 즐겁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한다. 작년 10월에는 ‘오래된숲’에서 오민석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무려 A4 용지 네 장에 내용을 기록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무언가를 기록하며 공부해 본 건 처음이라 가슴이 벅차고, 늦은 나이에 시를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시를 읽고 또 읽으려고 거실에도 침대에도 식탁에도 시집을 놔뒀다. “오늘도 작가님이 오시니 우리는 진짜 복덩이예요, 복덩이. ‘詩간여행’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어요.” 기쁨 가득한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시에 푹 빠져 낭송하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며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쉽다는 회원, 동기간 보고 싶듯이 이 모임이 자꾸 생각난다는 회원, 마음속에서 뭔가 웅얼웅얼 튀어나오려고 한다는 회원. 이렇게 좋은 모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들을 보며 ‘詩간여행’이 얼마나 멋진 여행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청태전’처럼 구수하고 은은하게
시가 스며들다
오늘은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있는 날이다. 초청 저자는 『도요새 요리』 의 최광임 시인. 지난 모임 때 이 시집을 미리 읽고 공부한 회원들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강의를 들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저자의 말을 메모하며 듣는 집중력이 놀라웠다. 최 시인의 시 「문어 이야기」, 「팥죽을 끓이며」, 「무꽃이 아프다」 등을 낭송하는 회원들의 목소리는 절절하고 힘이 있다.
작년 저자와의 만남에서 강의한 인연으로 오늘도 왔다는 오민석 교수는 “‘詩간여행’은 장흥 차 ‘청태전’처럼 담백하고 소박한 깊이가 있어요. 분명 전문가들이 아닌데 문학성,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요. 장흥 주민들 내면에 문학 유전자가 깔려 있구나 싶어요. ‘詩간여행’ 같은 독서 모임 문화가 장흥 지역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독서동아리 ‘詩간여행’에는 시와 차, 그리고 장흥 사람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빛깔이 있다. 시를 읽고 낭송하며 누구보다 시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 시를 읽고, 시를 읊다 보면 모두 시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 시와 문학이 스민 장흥 곳곳에 제2, 제3의 ‘詩간여행’들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장흥에 가면 꼭 탐진강변에 있는 ‘8정자’에 들러보시라. 어쩌면 정자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청태전’을 마시며 시를 읽고 낭송하는 장흥의 복덩이 ‘詩간여행’을 만날지도 모른다.
★인터뷰 및 글. 안영숙 독서동아리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