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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 주는 선물은
경청의 힘
울산 ‘일장일단’
모이는 곳
울산시 중구 ‘모퉁이’
모이는 사람들
40~60대 주부, 퇴직 교사 등
추천 도서
『토지』전21권 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 펴냄
『풍자화전』 제아미 지음, 김충영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하로부터의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펴냄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문학동네 펴냄
『화산도』 김석범 지음, 김환기, 김학동 옮김, 보고사 펴냄
드디어 이름을 얻은 독서동아리
울산시 중구 장춘로 102-1, ‘일장일단’ 김연숙 대표가 운영하는 ‘모퉁이’라는 문화공간에 도착하니, 모임 시작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김연숙 대표와 책 이야기, 동아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회원들이 하나 둘 모였다. 2016년 겨울에 이름도 없이, 그저 책을 낭독하는 모임으로 시작했으나 2020년에 비로소 ‘일장일단’이라는 동아리 이름을 얻었다.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 읽는 이 동아리의 특징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대체로 긴 호흡의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장편이 끝나면 시집이나 단편을 읽으며 숨 고르기를 하느라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 읽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모여 책을 낭독하는데, 올해 2월부터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고 있다. 이 날은 토지 5부, 16권 1장을 읽을 차례다. 보통 한 사람이 1장을 읽는데, 이 날은 유독 분량이 많아서 거의 한 시간 동안 읽어야 했다. 그럼에도 지친 기색 없이 낭랑하게 책을 읽는 최기완 회원의 모습을 보고, 오래된 동아리의 낭독 내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장일단’은 비슷한 시기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친구로 이루어진 50~60대 모임인데, 현재 총 회원은 5명이다. 우연히 김 대표를 알게 된 한 회원이 친구를 소개해서 자연스럽게 모임에 합류했고, 지나가다 책 읽는 이들의 모습을 본 남편의 추천으로 모임에 합류한 40대 회원 한 명은 현재 늦둥이 출산으로 휴가 중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4인이 되어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날 참석한 회원들 중 누군가는 고구마를 가져오고, 누군가는 커피, 누구는 인절미와 팥떡을 준비해왔다. 책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금방 허기가 져서 간식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힌』, 『화산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백석』, 『토지』 등 다양한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장단장단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책을 읽을 예정이고 다음 책은 박상륭 전집이 어떨까 논의 중이며, 관심이 가는 주제가 있으면 그에 맞는 책을 고르거나 수다를 떨다가 즉흥적으로 정하기도 한다. 회원들은 ‘일장일단’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며, 삶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독서 모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낭독의 발견 혹은 낭독의 힘
책을 잘 안 읽는데 모여서 낭독한다니 부담이 적어 참여했다는 회원, 무조건 해보자는 생각과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는 회원, 큰 기대 없이 들어왔으나 관심이 가는 책으로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는 회원도 있었다. “토론이 아닌 읽기여서 좋았고, 책에 대한 정보나 지식 없이 따라가면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라며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아무래도 읽고 모이는 것이 아닌, 모여서 읽는 모임이라 부담감이 적다는 게 이 독서동아리의 매력인 것 같았다.
한 회원은 독서동아리 활동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일단 함께 읽어라, 읽다 보면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면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공감하게 된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동아리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동아리 활동을 적극 추천했다.
박미숙 회원은 “독서동아리를 시작할 때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받으며 한 번씩 나의 고정 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혼자였으면 내 것을 쌓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와 다른 생각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극단적인 성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나를 한 번 더 다듬는 기회가 되었고, 회원들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성격도 둥글둥글해졌다.”라고 밝혔다.
동아리를 함께 하면서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김지현 회원은 “김연숙 대표가 늘 나에게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시 창작과 낭송을 배우는 중이다. 이렇게 시를 접하고 좋아하는데,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주니 자극이 돼서 혼자 써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군룡무수, 그리고 확장성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생긴 변화는 “지속해서 읽기가 어려운데 규칙적으로 읽으니 읽고 싶은 책을 읽어낼 힘이 생겼다. 혼자 하는 독서가 지식을 얻는 책 읽기다면, 함께하는 독서는 분위기나 삶의 자세 이런 것이 스며들어 내 삶이 조금씩 바뀐다는 느낌이다.”라는 회원도 있었고 “나는 건조한 스타일이었는데 책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그래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보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하는 회원도 있었다. 김연숙 대표는 “이것은 몇 년간 소리 내어 읽으며 감각이 깨어난 것이고, 경청의 힘이 생긴 것이다. 오감이 살아나면서 내 삶이 깨어나 새롭게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기 위해 모였는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고 전시도 하는 경험을 나누게 되었다. 뜨개질도 배워 가방을 만들고, 저자 강연으로 젊은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 일은 회원들의 경험을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고, 회원들 또한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일장일단’ 회원들이 독서동아리를 계속하는 매력은 뭘까? 회원들은 ‘군룡무수群龍無首’를 꼽았다. 우두머리는 없지만 배움이 있어 끌리게 된다는 것, 그리고 모임에서 만난 분들이 모두 선한 사람들이라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다. 무엇보다 모임을 제일 우위에 두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결석도 하지 않는다며, 뭔가 한 번 정해지면 중심에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일장일단’은 책으로 변화를 경험하고 스스로 삶의 역을 확장시켜 함께 성장해가는 사람들의 독서동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 잉여시간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일장일단’은 좋은 본보기가 되는 독서동아리다.
★인터뷰 및 글. 장시우 독서동아리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