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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평화를 고민하다
독서동아리 ‘수평회’
모이는 곳
서울 종로구 독립서점 ‘레드북스’
모이는 사람들
20~50대 학생, 직장인 등
추천도서
·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펴냄)
· 젠더와 민족 (니라 유발 데이비스 지음, 그린비 펴냄)
· 생명의 여자들에게 (다나카 미쓰 지음, 두번째테제 펴냄)
· 함락된 도시의 여자 (익명의 여성 지음, 마티 펴냄)
· 나치의 병사들 (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지음, 민음사 펴냄)
평화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의 평화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참으로 간단한 한 줄 정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폭력과 차별을 마주하는 요즘, 평화에 대한 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수요일 저녁,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대문구의 작은 독립서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격주 수요일마다 독서모임 ‘수평회’의 회원들이 함께 책을 읽고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민과 실천을 통해 적극적인 평화를 이루고 싶어
‘수평회’는 ‘모든 폭력과 차별에 맞서 평화를 지킬 궁리를 하는 사람들의 수요 평화 모임’을 줄여 만든 이름이다. 2018년 늦여름, 전쟁과 여성,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에서부터 평화에 대한 ‘수평회’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고민은 미군기지를 떠받치는 기지 자본주의와 기지촌 여성들의 삶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성 산업화 문제와 페미니즘, 퀴어 이론으로 관심사가 확장되었다.
“‘평화’라는 커다란 주제를 하나 정했어요.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서의 평화. 그래서 지난 1년 동안은 거의 페미니즘과 퀴어, 트렌스젠더에 대한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그런 문제들을 눈여겨보다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억압은 훨씬 복잡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더 섬세하게 보기 위해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자본에 대한,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 시리즈를 읽고 있어요.”
모임의 관심사가 흘러감에 따라 선정하는 책의 주제도 달라진다. 명확한 도서 선정 기준을 정해놓지 않고, 참고문헌을 보고 흥미가 생기거나 회원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기면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도서를 선정한다. 한 회원은 “읽은 책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읽었는지, 관심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가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수평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본이다. 인터뷰 당일, 회원들은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를 읽고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6주 동안 『다시 자본을 읽자』를 6권까지 읽었고, 다음 시간에는 저자와 북토크를 연다. 겨울방학에는 7권부터 12권까지 읽고, 방학이 끝나면 저자와 끝장 토론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차별과 폭력을 인지하고 깨닫는 과정
“‘수평회’는 20대부터 50대까지 있고, 직업도 다양해요. 평화운동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평화 의료 연대, 병역거부자, 대학을 안 가고 대학 밖에서 공부를 하려는 친구도 있고, 대학 교수도 있어요. 근데 특이한 게 사회에서의 직급이 여기에서는 안 통해요.”
차별과 폭력, 평화를 이야기하는 모임이니만큼, 진행 방식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했다. 공론장에서의 호칭은 모두 ‘쌤’이다. 회원들은 “사석에서는 관계에 따라 반말도 하지만, ‘꼰대’는 살아남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웃으며 말했다. 리더로서 이끄는 것도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회자나 리더도 정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은 권력이거든요. 왜냐하면 말의 자리를 장악하는 거니까. 그래서 스스로 오늘 말을 많이 한다 싶으면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말도 돌아가면서 할 수 있게. 근데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말하는 것도 이상해요. 말을 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말하고, 발제도 자발적으로 해요. 관심 있는 주제로.”
“차별과 폭력이라는 것은 이야기하면서 드러나기도 해요. 서로 그게 차별, 폭력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차별이 될 수도, 폭력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계기들이 있는 거죠. 근데 그건 서로 강도가 다 다른 것 같아요. 과정이 다 다르니까요.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아직 그렇게 안 느껴질 수도 있고. 아무튼 이 과정 속에서 우리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 맞아요.”
회원들은 함께 책을 읽으며 평소 생각지 못했던 차별이나 폭력을 깨달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모임에서 다시 읽으면 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누구와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 책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놀이터
‘수평회’가 어떤 의미인지 묻자 회원들은 ‘놀이터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회원은 “빡센(?) 놀이터예요. 되게 열심히 놀고 집에 가면 땀이 난다니까요”라며 웃었다. 가끔은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돼?’라며 힘듦(?)을 토로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다 같이 영화제에 가는 등 분위기를 푸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한 회원은 “저는 이번 세미나까지 1년 반 정도 하고 다음 학기는 너무 바빠서 쉴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부담스럽지 않아요.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여기 올 때가 제일 생생한 느낌이 들어요. 여기 와야 살아 있는 느낌이고 학교 공부도 잘 되는 것 같아요”라며 ‘수평회’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무언가를 지향하지 않는 게 우리의 지향점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멤버들이 답답해했어요. 왜 모였는지, 무엇이 목적인지 설명해줄 사람도 없고. 근데 지향점이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 지향점을 생성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계획도 사실 창피하지만 무계획이에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비워놓는 것 같아요. 이거 해볼까? 하면 닥치는 대로 해보고. 해봤더니 아닌 것 같았던 것도 있어요.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요.”
“딱 정해놓은 건 없지만, 개개인이 이 모임을 통해서 변화되고 자신의 계획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계획이 나선형으로 수렴하는 느낌이 좀 있어요. 다 제각각인 것 같았는데, 여기서 공부했던 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교류가 되거든요. 처음에 설정하지 않았던 지향점이 저절로 발생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게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회원들은 ‘지향점을 함께 생성하는 과정에 있다’라고 전했다.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도록 비워두고 함께 채워나가겠다는 포부가 ‘수평회’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회’는 ‘우리가 바뀌는 만큼 세계도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임을 이끌어간다. 큰 바다에 잔잔한 바람이 분다고 해서 엄청난 파도가 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바람이 바다를 계속 흔들면 언젠가 파도가 이는 것처럼, ‘수평회’가 만드는 작은 변화들로 인해 세상은 분명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김규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