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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약을 선택한 사람들의 독서모임
빨간약독서회
모이는 곳
전북 전주시 완산구 소재 카페
모이는 사람들
20~30대 여성 직장인
추천도서
·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지음, 민음사 펴냄)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 지음, 민음사 펴냄)
·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은행나무 펴냄)
·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김진아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빨간약독서회’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처럼 아프지만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의 페미니즘 독서모임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페미니스트로서 공감하고 배우며 성장해나가고 있는 ‘빨간약독서회’를 만나보았다.
감자, 보리, 라니, 위즈, 튬
오후 2시,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한적한 카페 ‘스몰해빛’이 생기를 찾는 시간이다. 이날의 토론 도서인 김진아 작가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손에 쥔 회원들이 하나둘 카페에 들어서자, 조용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책과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게 얼마 만이야, 감자!”
“라니, 잘 지냈어요?”
회원들은 실명이 아닌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감자, 보리, 라니, 위즈, 튬. 저마다 개성 넘치는 별명을 지닌 이들 5명은 모두 결혼하지 않은 이삼십 대 여성 직장인이다. 작년 겨울, 직장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함께 책을 읽으며 가까워졌다. ‘빨간약독서회’의 창설 시기가 이들의 입사 시기와 맞닿아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매달 두 차례의 모임을 꾸준히 이어온 결과, 현재는 회원 수도 8명으로 늘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났기에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수월했고, 이는 꾸준히 모임을 이어오는 비결이 되었다.
페미니즘을 외면할 수 없었다
‘빨간약독서회’의 결성을 주도한 ‘튬’은 페미니즘에 관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책을 매개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갈증이 컸던 튬은 그녀의 소망이 현실이 된 지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껏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매순간 느낀 불편한 감정들을 홀로 껴안으며 끙끙 앓던 ‘보리’에게 이곳 ‘빨간약독서회’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가 되었다. ‘위즈’ 역시 회원들을 만나기 이전에는 살면서 느낀 불편한 감정의 출처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스스로 알고 행동하는 것과 모르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지니는지 깨닫게 되었다. 모임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회원은 ‘감자’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바꿔놓았고, 이는 그녀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혼자서는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아서 같이 읽어나갈 사람이 필요했다는 ‘라니’는 모임에서 회원들과 함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해방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녀에게 ‘빨간약독서회’는 소통의 공간이자, 위로의 공간이다.
“모임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점차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페미니즘을 외면할 수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모두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시간
회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추천받은 도서 목록을 쭉 정리한 뒤에 구체적인 독서 계획을 세운다. 책을 선정하는 방식에도 회원들 모두의 취향을 고려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모임 당일에는 그날의 진행자가 토론 도서를 바탕으로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다양한 질문을 생각해온다. 발언 순서를 굳이 정하지 않아도 모두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바쁘다.
이들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자 강연 행사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디의 우산』의 황정은 작가, 전주독서대전에서 열린 이슬아 작가의 강연에도 회원들 모두가 함께 참여했다.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독서모임이 되고 싶다
‘빨간약독서회’의 목표는 확고하다.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독서모임이 되는 것. 그리하여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페미니즘이 더욱 활발히 논의되는 것이 회원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잃어버린 파이를 되찾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고군분투하는 일터의 여성들 모두에게, ‘빨간약독서회’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아직까지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이것에 무뎌지고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구민정(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