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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온기와 따뜻한 세상
독서동아리 ‘북소리’
모이는 곳
서울 강동구 천일어린이도서관
모이는 사람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추천도서
· 엄마의 의자 (베라 윌리엄스 지음, 시공주니어 펴냄)
· 마법 침대 (존 버닝햄 지음, 시공주니어 펴냄)
· 에드와르도 :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존 버닝햄 지음, 비룡소 펴냄)
· 팬티 입은 늑대 (윌프리드 루파노 지음, 마야나 이토이즈 그림, 키위북스 펴냄)
· 아빠, 나한테 물어봐 (버나드 와버 지음, 이수지 그림, 비룡소 펴냄)
오늘은 『팬티 입은 늑대』와 『엄마가 왜 좋아?』라는 그림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장을 넘기며 나긋나긋하게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잠 못 들던 밤에 부모님이 읽어준 그림책이 생각나 스르륵 잠에 들 뻔했다. 이야기가 짧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야깃거리는 충분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엄마가 왜 좋아?』 그림책을 보며 회원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회원은 어릴 적 생선 살은 발라서 자식들에게 주고 남은 생선 머리만 먹던 엄마가 떠올랐다며, 자신도 부모가 돼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나머지를 갖다 보니 ‘나머지의 맛’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이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강동구에는 강동 지역 아동·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뜻있는 개인과 단체가 모여 연대하는 ‘희망키움네트워크’가 있다. ‘북소리’ 또한 2011년 희망키움네트워크에서 발족해 본격적으로 어린이집 및 지역 아동센터를 방문해 ‘그림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북소리’는 소외계층 아이들의 정서적 지원을 위해 만들어져 강동구 내 열악한 지역 위주로 봉사를 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책 사각지대’를 겸하면서 책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또한 지역 아동센터 및 어린이집에서도 학습 프로그램이 위주였기 때문에 책을 접함으로써 아이들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아이들의 작은 쉼터가 되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에 보답하듯 봉사자들이 오는 날만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림책으로 전하는 포근한 온기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올망졸망 모여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화에 귀를 쫑긋 세우던 기억 말이다. 왕비도 됐다가 백설공주도 됐다가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바꾸는 선생님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다. ‘북소리’ 회원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줄까? 주인공이 책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실감 난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런데 예상외로 그들의 룰은 ‘그냥 읽어주기’였다. 대부분의 회원이 주부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집에서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줬던 편안한 느낌으로 봉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영주 대표는 ‘북소리’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동화구연처럼 과장되게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냥 읽어주기’는 과장된 연기나 몸짓이 아닌 본인 자체로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자는 취지에서였다. 또한 아이들에게 독후활동을 권장하지 않는다. 숙제처럼 독후감을 쓰고 질문을 받기보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책과 친해지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책보다는 스마트폰에 골똘히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흔하다. 그래도 봉사자가 책을 읽어줄 때만큼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건 오롯이 아이들 몫이었다. 그렇기에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일이 중요했다.
책 선정 방식은 자유롭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에 드는 흥미 있는 그림책을 선정한다. 또한 SNS를 이용해 반응이 좋았던 책이나 회원들의 추천 책을 게시한다. 다들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데 일가견이 있어 서로가 추천해주는 책은 다음 봉사 때 읽을 책으로 참고한다. 봉사 일정은 회원마다 방문하는 기관에 따라 상이하다. 회원들끼리 모이는 월 모임에서는 각자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기를 공유하는 자리다.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책을 읽어줬는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그림책을 직접 가져와 회원들에게 소개하고 읽어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어린이날에는 책 잔치에서 자체적으로 부스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그림책 속 따뜻한 세상이 오길 바라며
몇 년째 매주 시간을 내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러 간다는 안영미 회원은 “제대로 배워서 아이들에게 책을 소개해야겠단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적성과 잘 맞아서인지 이제는 습관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책을 접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고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지 않아도 마음이 치료된다’는 치유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책은 아이와 부모를 연결해주는 오작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민근영 회원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림책을 건넨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와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는 봉사 중에 아이들이 집중해서 입을 아~ 벌리고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 기분이 참 좋다고 한다. 네 살짜리 꼬마랑 어느 지점에서 무언갈 공유하는 느낌, 거기에서 책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이 있다. 시끌벅적하던 월 모임은 초창기보다 회원 수가 몰라보게 줄어 현재는 활동인원이 7명 정도다. 이에 신입모집 강좌와 워크숍을 개최해 신입모집에 힘쓰고 있다. 보수나 경력이 기재되는 게 아닌 순수한 봉사활동이라 본인 생활이 바빠지면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회원들 또한 처음에 30분씩 꾸준히 시간을 내야 함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봉사를 통해 얻은 것들이 있기에 오랫동안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함께할 신입회원들이 ‘북소리’의 문을 두드려주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_ 안영미
어렸을 때 책을 즐겁게 봤던 기억이 있으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 기억을 쫓아 책을 찾아가게 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할 기회를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우리가 전한 책의 온기를 통해 그들이 책과 함께 자라고 그 자녀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이 미쳤으면 좋겠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_ 김영주
그림책의 페이지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누구든 꽂히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그 장면을 품은 아이는 그 장면을 본 적이 없는 다른 이들과는 정서적으로 확실히 다르다. 나 자신도 마음을 튼튼하게 키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됐다. 봉사를 통해 만난 아이들이 그 밑바닥에 어떤 장면들을 통해 마음을 튼튼하게 다져서 자라줬으면 한다.
★강주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