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묘책술책'
모이는 곳 _ 인천 동구 금곡동
모이는 사람들 _ 직장인, 자영업자, 예술인 등
추천도서
1.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다산책방 펴냄)
2. 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돌베개 펴냄)
3.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호리베 아쓰시 지음, 민음사 펴냄)
4.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지음, 문학동네 펴냄)
5.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민음사 펴냄)
작은 배가 바닷물이 들어오던 수로를 통해 철교 밑까지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 배다리. 배다리는 한국 전쟁 후 1960년대에 서민들이 가지고 있던 책을 사고팔며 생겨난 헌책방 거리로 유명하다. 잔잔히 비가 오는 6월 말에 방문하게 된 배다리는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 느리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언젠가 시끌벅적하였을 이 거리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과 간판들로 왠지 모를 엄숙함도 느껴졌다. 거리의 분위기와는 달리 책방 안은 각양각색의 책들이 빼곡히 차 있었는데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방 골목의 가장 앞쪽에 있어 안내소 역할을 하는 ‘나비 날다’ 책방에 들어서자 따뜻한 분위기의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배다리 책방 지킴이인 고양이 반달이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비 날다’ 책방 옆에 위치한 ‘요일가게-괜찮아 잘 될 거야’로 가서 회원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예전의 조흥상회 창고를 복원해 개조한 공간으로 벽돌로 이루어진 벽, 나무 탁자 등 포근한 분위기의 책방이었다. 그곳에서는 동아리원들과 함께 나눌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묘책술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직장인, 자영업,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묘책술책’. 이토록 다양한 이들이 어떻게 배다리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부회장직을 맡고 계신 박수희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아리는 2015년 2월에 5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시작되었어요. 배다리는 책과 밀접한 환경이기 때문에 다들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는데 ‘백석 평전’ 책을 읽으며 시작된 책 모임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그 후로 동아리 회원들의 변동은 있었지만 현재는 7~8명 정도의 인원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어서 일정한 인원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와 새로운 회원의 유입 경로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었다. “별도로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폐쇄적인 편이라 할 수 있겠네요. 독서동아리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7~8명 이상이면 어려움을 느껴요. 모임을 가지면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배다리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아리 회원들이 유입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배다리 사람들이란 배다리 주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배다리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의미해요. 배다리 헌책방에 대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있거나. 배다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모두가 배다리 사람들이죠.”
책과 술, 술과 책. 이 둘은 가까운 듯 먼 듯한 사이로 느껴진다. 이러한 느낌을 잘 살린 것이 ‘묘책술책’ 동아리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동아리명을 묘책과 술책으로 나누어 알아보자. 먼저 묘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나비 날다’ 책방에서 마주친 고양이 반달이가 그 주인공. 고양이의 의미로 고양이 묘描책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두 번째는 묘책을 세운다는 의미의 묘妙로 쓰인다.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독서 모임을 하러 갈 때 묘책을 세우러 가자고 말하곤 해요.”라고 부회장님이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술책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당연하게도 술을 의미한다. 이는 묘책 모임 이후에 가지는 뒤풀이 모임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반드시 모두가 묘책 모임을 하고 술책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서 묘책 모임만 참여하거나 반대로 술책 모임만 참여할 수 있다. 술책 멤버가 따로 있을 정도. 즉, 술책 모임은 묘책에 오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인 것이다.
부회장님은 “묘책 모임은 앞으로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술책 모임은 이벤트 형식으로 오픈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술책 모임에 관심이 있다면 깜짝 이벤트를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동아리의 모임 일정은 매월 목요일 오후 7시로 명시되어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취재 당시에도 목요일이 아닌 화요일로 요일 변동이 있었다. 이는 동아리 회원들의 합의로 정해진다. 묘책모임, 술책모임의 장소도 매번 달라진다. 취재 당시 묘책모임은 배다리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아벨 서점 위에 있는 시 다락방에서 이루어졌으며, 술책모임은 다시 요일가게로 이동하여 진행되었다.
매 모임의 책 선정 역시 일부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회원들끼리 돌아가며 추천하는 책을 읽는 방식으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배다리엔 직장인, 자영업자, 예술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책이 선정된다. 또한, 지난 모임에서 소설을 읽었다면 다음번에는 다른 분야의 책을 선정하는 등 동아리 회원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 형성되어 중복을 피하려 노력한다. 이 때문에 많은 분야와 주제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묘책모임은 읽을 책으로 식물학자 및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씨의 『식물산책』이 선정되어 있었다. 2시간 정도 진행되는 동안 식물의 세세한 부분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천천히 그리는 드로잉처럼 ‘묘책술책’ 동아리원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마다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개나리, 청산 등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별명은 스스로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 지어지는데 나이로 수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배다리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별명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우리연구원들는 서로를 ‘사초’, ‘나자’ 등 각자의 분류군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라는 『식물산책』의 내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요일가게에서 술책 모임 준비가 시작되었다. 술책 모임의 메인 음식은 꽃 비빔밥과 된장국. 『식물산책』에 맞추어 준비된 것이라고 했다. 식물 이야기를 나누고 각종 새싹과 꽃 비빔밥을 먹는다는 게 매우 어울렸다. 간식도 책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토마토와 블루베리였다. 준비된 술은 집에서 직접 가져오신 수제 맥주와 와인으로 평범하지 않았다. 화려한 상차림에 놀라 매번 모임마다 직접 요리하여 술책 모임을 하는 것인지 물었더니, 웃으시면서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고 말하였다.
따뜻한 분위기 속의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는 배다리 사람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배다리 마을을 아끼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책방 골목을 지킨다. 또한 마을을 관통해 산업도로로 개발하려는 것을 공원에코 파크으로 만드는 등 배다리 사람들은 배다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지켜냈다.
『식물산책』에서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곧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책, 배다리,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이는 ‘묘책술책’ 동아리. 우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묘책술책’과 『식물산책』이 너무나도 닮아 있어 동아리와 책 모두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작성자: 청년취재단 이소현, 장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