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그림 보는 도슨트'
모이는 곳 _ 서울시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내 도슨트 사무실
모이는 사람들 _ 주부, 직장인, 대학원생, 도예가 등
동아리 추천도서
1. 임금의 도시 (이기봉 지음, 사회평론 펴냄)
2.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지음, 문학동네 펴냄)
3. 안목 (유홍준 지음, 눌와 펴냄)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에 이어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 책 읽기보다 책 읽은 후의 경험을 더 중시하는 동아리가 있다. 이들은 모여서 책을 읽기보다는, 어떤 공간에 가서 서로가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고 서로 나눈다. 신선한 공간에 가는 것은 그 자체로 기억을 활성화하는 자극제가 된다. 일단 그들은 낯선 공간에 가면 각자가 갖고 있던 독서 기억들을 슬슬 바깥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각자의 독서 기억에서 흘러나온 수다가 만나면 팡팡 튀는 이야기에 불꽃이 인다.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점차 목소리가 더 커진다. 조용한 공간에서 하는 독서 모임이 아닌 미술관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신기한 독서 모임, 바로 ‘그림 보는 도슨트’의 이야기다. 이들은 모두 미술관에 온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로 활동 하고 있다.
평소 미술관 도슨트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는 이들이 이날은 특별히 아늑한 공간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 양재역으로 모이기로 했다. 회원 중 한 분이 운영하는 도예 작업실이라 한다. 이날 아침부터 정여울 작가와의 대화를 준비하려 모여든 회원들을 만났다. 그들이 어떻게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어요. 회원은 직장인, 대학원생도 있고 주부도 있어요. 대부분 미술 전공을 하셨고요. 대표인 제가 먼저 하자고 해서 동아리가 결성되었는데요.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겁이 났어요. 저보다 선배이신 분들도 있는데, 이런 제안을 해도 될까 하면서요. 하지만 하고 나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어요. 다들 어찌나 배려를 잘 해주시는지….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는 참 좋은 인연이에요.”
일상에 치여 책 읽는 것을 힘들어 하는 현대인이 참 많다. 바쁜 일상 속에서 독서동아리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모두 빙긋이 웃으며 일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가 한 달 전에 공고해요. 어느 전시에 가겠다고 하죠. 그러면 한 달 뒤 다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료를 어떻게든 찾아서 모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함께 어떤 공간을 가면 이야기가 술술 나와요. 함께 있을 때 말이 끊이지 않고, 쫓겨날 걱정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대화한답니다.”
“아무래도 회원들끼리의 공감대가 다른 모임보다 높은 것 같아요. 잘 통하는 모임이라고 할까요?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관심사가 참 많거든요.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잘 통할 수밖에요. 그래서 여기 모임은 잘 안 빠지고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림 보는 도슨트’는 이날만 해도 회원의 8할이 자리해 있었고, 평소에도 9할 이상 참여한다고 한다. 모두들 정말로 이 모임을 즐기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림 보는 도슨트’가 타 모임과 구분되는 특징은 꼭 도슨트들의 모임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책 하나를 정해서 토론하거나 자기가 읽었던 책 중 한 권을 추천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같이 책을 읽어 와서 토론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경험하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읽으면 그 당시에는 좋은데 피부에 와 닿는 게 없으면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근대 건축 중에서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찾아다녔어요.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이라든지 회현에 생긴 ‘피크닉’이라든지, 또 ‘뮤지엄 산’이라든지…. 아, 저희 중에 도예가가 있다 보니 도예 체험도 해봤어요.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본인들이 읽었던 책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단어며 책 내용을 잘 잊어버리는데 이런 경험을 같이 하니 참 좋아요.”
“우리가 김수근 건축가가 만든 ‘공간’에 들어서자 한 분이 이 건물의 역사에 대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김수근 건축가가 만들었는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요. 각자의 이야기와 지식이 모여 훨씬 더 큰 것을 만들어 내죠. 그때 집단지성을 힘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제가 오십인데 이 나이 또래분들은 책을 읽은 게 이미 많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계속 앉아서 읽기만 하는 건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에 활동하며 느낀 것은 제가 선생님들에게 공간이라는 환경자극을 넣어주니까 자꾸 읽었던 것들이 기억난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재미가 시작되죠. 책 읽고 나서부터 진짜 경험이 시작되는 거라고 봅니다.”
이렇듯 독서와 문화 체험을 병행하면서 능동적인 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그림 보는 도슨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앞으로도 함께 전시를 볼 텐데요. 보긴 해야 하는데 혼자 가기 싫은, 그런 전시를 함께 보러 다니기로 했어요. 미술작품만이 아니라 공간에 미술이 들어간 전시를 주로 찾고 있어요.”
대화를 끝마치고 보니 궁금증이 들었다. ‘그림 보는 도슨트’가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말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희가 이렇게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는요. 우리나라의 책 문화 자체가 상당히 의무적인 게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반감이 참 커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너 한 달에 책 몇 권 읽냐’ 거든요. 제가 아들에게 독서에 대한 할당량을 정해준 적도 있었는데,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더라고요.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직접 찾아봐야 하는데 습관이 안 되면 그것도 어렵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찾아서 읽어야 한다는 거예요. 솔직히 우리나라는 책 읽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어요. 다들 공부라고 생각하는 게 크죠. 그게 참 안타까워요. 이 복잡한 세상, 공부만 많이 해서 뭐하겠어요? 책 읽는 문화가 즐기는 쪽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성자: 청년취재단 허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