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설’이다. 이들의 독설에 비하면 국내의 이른바 논객이니 독설가니 하는 사람들은 온순한 편이다. 위의 책에서 에코는 현대문명의 허위와 현대적 일상의 기이한 순간들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그 이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 중 하나가 책 속에 실린 ‘서문을 쓰는 방법’이다. 1987년에 쓴 에세이로 이 짧은 글에서 에코는 책의 서문들이 하나마나한 공치사와 무의미한 인사말로 채워져 있음을 풍자한다. 예컨대 에코는 가상의 서문을 쓰면서 자기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 인사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워할 것이 또 있다. 그들과 가장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녀석들의 머리 모양은 나의 감성과 배치되는 미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집 복도에서 그 녀석들과 마주치기보다는 차라리 서재에 홀로 틀어박혀 이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 완고한 의지가 내게 늘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에코는 유럽과 미국의 대학 출판부 관계자, 여러 잡지사 편집자들, 아내와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남긴다. 심지어 세계적인 타자기 회사인 올리베티 사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쓴다. 그 회사 ‘덕분에’ M21이라는 컴퓨터를 장만하게 되었고그러니까 아마도 타자기가 고장이라도 난 듯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스타 2000 때문에 원고를 다 마칠 수 있었다고 쓴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는 오키다타 마이크로라인 182라는 프린터로 인쇄를 했다고, 에코는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물론 가상의 서문이고 그 내용은 대부분은 농담이다. 심심풀이 삼아 내가 이런 농담을 패러디한다면 “구글 앱이 아니었다면 『주간경향』에 연재하는 이 칼럼을 쓰지 못했을 것이며, 페이스북에 자동 링크되는 온갖 야한 광고들 덕분에 글 쓰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저자들이 서문에 여러 관계자들을, 꽤나 필요 이상으로 수많은 기관이나 인명을 적는 것이 반드시 형식적인 인사가 아닌 경우도 많다. 주목할 만한 번역서를 보면 하버드에서 케임브리지까지 망라되고, 『뉴욕타임스』에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의 지면 책임자들이 언급되고, 각종 재단과 기관들이 그 책들의 각 장이 연구되고 쓰여지는 데 적절한 공간과 비용을 지원했다는 얘기 등을 읽게 된다. 학문적 가치는 고사하고 재임용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나 코딱지만한 연구비나 원고료라도 벌기 위해 기계처럼 논문을 써야 하는, 때로는 원고료나 연구비는커녕 국가 공인 등재지에 논문을 싣기 위하여 ‘게재료’를 따로 납부해야 하는 우리 학문의 실상에서 볼 때, 서너 페이지에 걸쳐 감사 인사를 책 앞에 밝히는 외국 저자들이 한없이 부럽다.
나는 지금 브루스 커밍스의 『미국 패권의 역사』서해문집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커밍스는 한국과 한국전쟁을 통하여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을 분석해온 학자다. 한국전쟁에 관하여 그가 미국학계는 물론 한국 학계와 사회계 및 운동계에 끼친 영향도 상당하다. 『미국 패권의 역사』 서문에도 밝히고 있다시피 그는 1961년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위압적인 제국적 풍경에 충격을 받았으며, 그 후 한국전쟁을 통해 아시아와 현대 세계사를 밝히는 데 집중해 왔다. 한반도는 이미 1945년 해방 당시부터 사실상 내전상태였다는 게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1950년 6월 25일을 전후로 한 시기에 ‘누가 먼저 총을 쏘며 도발했는가’ 하는 문제보다 2차 대전 직후의 동아시아 지배구조 재편과정에서 전개된 각종 모순의 집약적인 폭발이 한국전쟁이었음을, 커밍스는 단지 ‘주장’을 한 게 아니라 여러 자료를 통하여 ‘입증’을 하였다. 아베 정권의 과거사 왜곡에 항의하는 학자들의 성명서에 참여하였고,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반대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어떤 점에서는 한국의 학자들보다 한국전쟁과 한국 사회에 대해 풍부한 이해와 분명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까닭에 커밍스는 『미국 패권의 역사』 맨 앞의 ‘한국어 판 서문’을 각별하게 쓰고 있다. 보통의 경우에 ‘한국을 잘 모르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 책이 소개되어 영광이며 앞으로 지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원한다’는 정도의 인사치레지만 커밍스의 ‘한국어판 서문’은 무려 7페이지나 되며 깊은 공감과 이해의 문장으로 인하여, 뜨겁다. 이 서문에서 그가 김동노, 임종명, 박진빈 등 국내 교수를 언급할 때는 단순한 네트워크를 넘어 뭉클한 지적 동반자의 느낌을 준다. 60년대 한국 생활 체험에 녹아 있는 문장을 보자.
“푸른색 유엔사령부 깃발 아래서 미군들이 운동하고 있었는데, 나는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나 지난 그 곳에 왜 여전히 그들이 있는지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 특히 나 같은 젊은이당시 나는 평화봉사단원이었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어른들은 명백히 인종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맛있는 치즈버거를 먹기 위해 용산에 있는 거대한 미군기지를 나는 즐겁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한국 사람은자기 나라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자동차 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를 가진 이태원의 교외풍 주택에는 미국 공무원들이 살고 있었다.”
커밍스는 이러한 마음이 확장되고 깊어진 이성의 힘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하였고, 그 결실인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전쟁 그 자체의 본질적인 전개과정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재편하고 지배하였는가를 입증해냈다. 그리고 이 책 『미국 패권의 역사』는 미국의 현대사를 태평양 연안이라는 정치적 시공간에 집중하여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커밍스가 밝힌 바를 요약하면 이 책은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태평양 연안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단순히 미국 서부지역에 관한 지역학적 책이 아니며,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 개입한 것만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미국이 세계적인 지배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태평양 연안 일대를 어떻게 유토피아로 상상하여 강력한 신념으로 이른바 ‘개척’을 하였으며, 이로써 현대 미국의 집합적 사유체계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는 정치·사회적 사료뿐만 아니라 현대 미국의 수많은 문학과 영화와 광고들이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수집되고 재평가된다. 그 집필 방식이 ‘서문’에 이미 드러난다. 14쪽에 달하는 긴 ‘서문’의 끝에 커밍스는 따로 ‘개인적 노트’라고 적고는, 캘리포니아를 동경하며 자동차 광고를 유심히 보던 열 살 때의 기억이나 1974년에 박사학위 최종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보았던 영화 『차이나타운』을 회상한다. 그러한 문화적 체험이 미국 동부지역의 지배세력이 어떻게 태평양 연안 지역을 상상하고 ‘개척’했는지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체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치학과 역사학의 책일 뿐만 아니라 문화학의 책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감사의 말’이 따로 실려 있다. 무려 7쪽이다. 수많은 학자와 기관과 재단이 언급된다. 그리고 한국의 학자들이 언급된다. 김동노, 김광웅, 김성한, 최장집, 백낙청. 나는 이러한 명단이 세계 전체를 ‘국내 문제’로 인식하는 거대한 미합중국의 이른바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네트워크를 자랑하기 위해 언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이 글은 2017년 11월 7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