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만간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요구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지난호에 썼듯이, 니체는 자신의 사상적 자서전이 되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처럼 장중하면서도 담대하고 심오하면서도 천하제일 멘털 갑인 서문은 달리 읽은 기억이 없다. 그는 이 서문에서 자신의 다른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책으로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수천년간을 퍼져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것 중 최고의 책이며, 진정 높은 공기의 책이다. 인간의 만사가 그 책의 밑에 아득하게 놓여 있다.”
하아, 이토록 자존감 높은 서문이 달리 또 있으랴. 니체는 자신이 인류에게 준 책이 “두레박을 내리면 황금과 선의가 담겨 올라오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까지 했다. “얼음과 높은 산에서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자신은, 철학은 “이제껏 도덕에 의해 추방당해 왔던 모든 것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기에 “오로지 진리만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온 역사 속에서 자신의 “철학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고 그는 쓴다.
그러니, 니체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표현처럼 “높은 곳의 강렬한 공기”로 이뤄진 니체의 책들을 읽기 위하여, 그의 책들이 19세기 중후반의 유럽 지성계에 던진 파문을 알기 위하여, 그야말로 낡은 도덕과 권위적 종교와 인간의 내면을 억압하는 교훈들을 아예 ‘망치’로 내려치는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사람을 보라』, 라틴어가 원문인데 그것은 ‘Ecce Homo’다. 「요한복음」 19장 5절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후 성난 군중들 앞에서 피투성이 예수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친다. “에케 호모”, 즉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광기어린 군중들이 일제히 외친다. “십자가에 매달아라!”
그때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와 사상가들이 이 단어로 얼룩진 서양사의 내면 풍경을 해독하고자 했으며, 또 많은 예술가들이 이 충격적인 사건을 형상화하였다.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1470년쯤에 그린 ‘에케 호모’는 끔찍하다. 빌라도 총독과 몇몇 권력자들은 죄악의 현장에서 슬쩍 물러서려고 한다. 험악한 얼굴을 한 군중들은 잔인하게 야유하고 조롱한다. 거의 발가벗겨진 채 심한 채찍질을 당한 예수는 구세주도 어린 양도 아닌, 그저 심한 모욕과 매질에 겁에 질린 채 군중 앞으로 끌려가고 있다. 보라, 이 사람을! 이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이냐.
동시대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에케 호모」는 또 어떠한가. 1509년 작 동판화에서 예수는 뒤러의 섬세한 칼날을 당한다. 17세기가 되어서야 이탈리아의 카라비지오나 프랑스의 상파뉴의 그림에서, 처참하게 매질을 당했음에도, 의연한 청년이자 인류의 구원자 얼굴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초엽,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불만과 히틀러 시대의 불안을 그린 게오르크 그로츠는 ‘에케 호모’ 연작을 통해, 기독교 문화사의 오랜 경구를 저속한 쾌락에 대한 무의미한 탐닉을 풍자하는 용어로까지 확장한다. 만약 음악으로 단번에 이 말의 강력한 힘, 압도적인 의미를 느끼고 싶다면, 바흐의 2시간40분이 넘는 대작 「마태수난곡」 중 바로 그 장면을 들어보라. 성경에는 단 몇 줄이지만, 바흐는 이 순간을 위하여 독창 아리아와 대규모 합창을 다양하게 섞어서, 이 대곡의 가장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예수를 몇 차례 채찍질한 빌라도는 자신은 이 역사적인 순간과 상관이 없다는 듯 손을 씻은 후 ‘나는 이 자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선언한 후 군중들을 향하여 너희들 뜻대로 하라고 외치자, 군중들이 격렬히 외친다. 바흐의 독일어 대본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Lass ihn Kreuzien.”
지금 당장 유튜브로 ‘bach Lass ihn Kreuzien’을 쳐보라. 왜 바흐가, 그리고 유럽 사람들이 이 가장 끔찍한 죄악의 순간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해 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공범이었던 파괴적인 광기! 그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이후로 끝없이 되풀이되어온 일이 아니었던가. 광기어린 군중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이 정녕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한 번 더 외친다. 십자가에 매달아라, 그의 피가 대대손손 우리 자식들을 적실지라도, 지금 당장은 매달아라, 십자가에 매달아라. 니체는 바로 그런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 말을 가져와서, 자신의 지적 자서전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잔혹하게 당한 예수처럼,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위상과 자신의 생애를 거의 박해받은 수난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보자. 이 책은 자서전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단순히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디서 공부하고 누구를 처음 사랑하였는가 하는 단순 생애사는 아니다. 그런 걸 쓰자고 니체가 “내가 조만간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요구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고 이 책의 서문에 적은 것은 아니다.
본문은 다른 책들에 비하여, 구체적인 인물과 장소가 등장하기 때문에 비교적 읽기 쉽다 해도, 그러나 책의 부피를 장악하고 있는 장중하면서도 좀처럼 알 수 없는 아포리즘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본문을 시작하자마자 니체는 “나는 내 아버지로서는 이미 사망했고, 내 어머니로서는 아직도 살아서 늙어가고 있다”고 쓴다. 이런 회고의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강대석의 『니체 평전』과 고병권의 해설서가 필요하다.
이 두 책을 통하여 니체의 생애사가 어떠하였으며 왜 아포리즘으로 밀어붙이는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였는지 알 수 있다. 니체에게 문체 스타일이란 본질적으로 철학자의 “파토스의 내적 긴장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저자의 파토스, 즉 철학자 니체의 주체할 수 없을 강렬한 정념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니체는 “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내적 상태의 다양성이 크다. 따라서 나는 아주 많은 스타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니체의 최후의 저작으로 1888년에 쓰여졌으나 1908년, 그러니까 그가 죽은 지1900년 8월 8년이나 지나서야 출간된 이 책은 여전히 뜨겁다. 『모더니즘』에서 피터 게이는 “1889년 초 니체는 고칠 수 없는 정신병이 발병하여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11년 뒤 그가 죽었을 때 귀족적이면서도 무정부적인 그의 열정적인 메시지는 이미 상당한 수의 열광적인 팬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때는 대중을 도취시키기도 했다”고 썼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적어도 철학과 문화사의 측면에서 니체의 이름이 각주만으로 처리된 적은 없다.
그러나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의 끝에서 자신이 신화화되고 자기 책이 주술화되고, 그리하여 그저 니체라는 이름이 거품처럼 신드롬이 되어 떠도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제 너희에게 말하니, 나를 버리고 너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할 때에야 나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어떠한가. 이 서문 한마디로 『이 사람을 보라』를 포함한 니체의 책들을 우선은 당장 펼쳐보고 싶지 아니한가.
★ 이 글은 2017년 8월 1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