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네 아벨의 첫 소설 『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과 부제만 보았을 때,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그레첸이 먼저 떠올랐다. 이 소설의 그레첸 또한 불가능한 사랑으로 파괴되는 현대판 멜로물의 여주인공일까 막연한 추측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나의 통속적 상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주로 사변적인 SF의 현란한 상상력에 매료되어 있다가, 요즘 보기 드문 진지한 사실주의 소설과 마주하면서 수잔네 아벨의 작가로서 소명의식에 놀랐다. 그로 인해 전쟁을 경험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집단적 목소리가 한 여성을 관통하여 흘러가면서 생생한 얼굴을 가진 구체적인 허스토리로 다가오게 된다.
수잔네 아벨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 여성들이 전쟁 난민으로 경험했던 고통과 사랑을 구체적인 서사로 만들어낸다. 그녀는 역사적 알츠하이머로 망각되었던 동프로이센의 아일라우 출신 그레타 쇤나이히의 사소하고 ‘수치스럽고’ 하찮은 삶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 노력의 결과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꼬마 히틀러 숭배자였던 여덟 살 그레첸이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전쟁, 국가폭력, 성차별, 인종차별을 가로지르는 사랑의 고통과 상실의 슬픔에 관한 생애사를 촘촘하게 얽어 짤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처럼 전쟁, 국가, 계급, 젠더, 피부색, 난민 등의 거대담론이 미시적인 사적담론과 교차하게 될 때, 공식적인 역사가 치욕으로 매장시켜버린 허스토리가 압력을 뚫고 터져 나오게 된다. 전쟁을 통과하면서 살아남은 여자들이 보여주는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이 박제된 공적 역사의 얼음을 깨는 정釘으로 기능한다. 그레타의 알츠하이머로 인해 단단하게 봉인해 두었던 그녀의 과거는 오랜 세월 먼 길을 우회하다가 느닷없이 귀환하게 된다.
『그레첸을 멀리하라』는 근과거였던 2015년 7월에서부터 2016년 사이 3월, 8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의 기록인데, 밀폐유의 시간성처럼 현재 한 겹, 과거 한 겹이 교대로 삽입되면서 전개된다. 현재 시점인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사이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9년에서부터 종전 이후 1953년까지 있었던 일들이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다. 소설 속에서 현재 시점인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의 일들은 치매인 그레타의 의식처럼 흐릿하지만, 1939년에서부터 1953년 사이 일어난 먼 과거의 일들은 어제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2015년 7월의 쾰른이다. 84세가 된 그레타는 젊은이 못지않은 기억력과 활력을 갖고 있다. 의사였던 남편 몬데라스 씨가 오래전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것을 제외하면 가족처럼 돌봐주는 관리인 헬가도 있고, 남편이 남겨놓은 풍족한 유산도 있다. 쾰른 방송국의 유명 앵커인 아들도 있다. 아들 토마스가 전하는 뉴스를 보는 것이 그녀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노년이지만 그레타는 부족한 것 없이 건강하고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삶이란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나이에도 철없이 컨버터블 쿠페 스포츠카를 주문할 정도로 속도를 즐기는 그녀에게 그날따라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수천 번도 더 다녔던 쾰른으로 빠져나가는 램프를 놓치고 또 놓친다. 그녀의 차는 쾰른에서 240km나 떨어진 도로 위에서 거의 탈진 상태로 마침내 멈춰 서게 된다. 하마터면 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토마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식을 듣는다. 총기 있고 활달했던 어머니 그레타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안정한 어머니의 상태와 더불어 잘나가던 그의 삶 또한 뭔가 위태로운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책무로서 탐사보도를 하느라 세계의 절반을 돌아다녔던 이십 대 시절과 달리 안정된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시청률, 명성, 돈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그에게 젊고 유망한 신입 앵커가 경쟁자로 치고 올라온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모든 것들을 준비해 주었던 비서 사빈이 치매로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오늘따라 자리를 비우게 된다. 그녀의 대타로 톰이 싫어하는 제니가 어설픈 임시 비서 역할을 대신한다. 이건 세상이 분명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들이었다.
오늘 뉴스는 죽음을 각오하고 유럽행을 감행하는 난민들에 관한 것이다. 내전이 발발한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난민들이 몰려들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국경을 봉쇄한다. 독일만이 난민이 거주할 공간을 하이데나우에 짓기로 한다. 하지만 극우파들은 난민입국에 난동을 부리면서 폭력시위를 이어간다. 특종을 잡기 위해서라도 톰은 메르켈 총리를 만나 난민 문제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인터뷰하고자 한다. 전쟁 난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메르켈은 그들과 만나게 되면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라는 선언이 살아 있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라고 선언한다. 메르켈의 이 말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2015년 독일로 밀려드는 전쟁 난민들은 70년 전 2차대전으로 자국에서 전쟁 피난민이 되었던 독일의 과거와 겹쳐진다. 동프로이센에서 살았던 그레타 가족도 그런 전쟁 이주민들 중 하나였다.
쾰른 여름 축제의 폭죽이 펑펑 터진다. 폭죽 터지는 소리에 잠결에서 깨어난 그레타는 전쟁임을 직감한다. 포탄 소리에 그레타는 1939년으로 돌아간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대패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군이 동프로이센을 점령하게 되었다. 소련군이 점령하지 않은 남쪽의 하이델베르크로 떠나는 피난민 행렬에 그녀 가족도 끼어있었다. 패전국인 독일의 하층민들에게 특히나 전쟁은 생지옥이었다. 굶주림과 추위뿐만 아니라 허약한 노인들, 여성과 아이들은 소련군의 강간, 약탈,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전후 젊은 여성들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창녀 취급을 당한다. 점령군이자 해방군으로 입성한 미군 병사들과 사랑에 빠진 여성들은 혐오와 린치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리안 민족의 순혈을 더럽히는 여자들은 조국의 배신자이자, 창녀들이며, 부끄러운 존재들이었다. 제3제국은 우생학에 기반하여 아리아인들의 우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여성들은 혼혈의 운명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라는 총통의 지령을 받았던 나라였으니, 혼혈을 생산한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레타의 가족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상류층 친척이자 의대 교수였던 헤르만의 저택에서 기생하게 된다. 헤르만은 나치의 생체실험에 동조한 죄목으로 구속되었고, 저택은 미군들이 접수하여 군사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상류층 사모님으로서 살았던 엘리제 할머니는 동유럽에서 이주한 가난한 친척을 하인 부리듯 한다. 그레타 가족은 엘리제 할머니 댁에서 허드렛일과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살다가 허름한 농가의 창고 건물로 옮겨가서 혹독한 겨울을 살아남는다. 엘리제 할머니의 저택은 미군의 군사사무실로 사용되었으므로 그레타는 미군 병사들과 마주칠 일이 많았다. 미군 병사들이 진주한 곳이면 어디든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는 아이들이 있었고, 독일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후 물품이 귀했지만 무엇이든 암시장을 통해 사고팔 수 있었고 그레타는 미군들이 피던 담배꽁초를 다시 말아서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엘리제 할머니의 물건을 대신 내다 팔고 슬쩍한 돈으로 엄마에게 싱거 재봉틀을 사줄 정도가 되었다. 재봉틀은 그레타 가족의 ‘시초적 자본축적’이 가능하도록 해주었고, 그녀 가족은 절대적 궁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미군부대에서 일감을 가져다주면서 도움을 주었던 미군 병사가 있었다.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친절을 베풀었던 젠틀한 미군 병사가 로버트 밥 쿠퍼 일병이었다. 그레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톰은 치매 어머니가 애지중지 보관했던 상자를 열어보고 그 안에서 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키가 2m가 넘는 장신의 미군 병사가 그들 가족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엄혹했던 시절에 이런 따뜻한 관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상자 안에는 오래되어 낡은 부두 인형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30대 시절 운전면허증 안에 갈색 피부의 여자아이 사진도 있었다. 톰은 어머니가 평생 감추고 있었던 비밀이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느닷없이 며칠씩 사라졌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톰은 자기가 뭔가를 잘못해서 엄마가 사라진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엄마가 평생 안고 살았던 트라우마가 그다음 세대에게 마치 집단 무의식처럼 전해지고 있음을 톰은 비로소 알게 된다. 트라우마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았던 세대에게서도 부모의 영향으로 불안, 우울, 공포, 불면, 무기력증, 약물중독 등으로 발현되는 현상을 트라우마의 전이라고 일컫는다. 톰은 자신의 고통이 엄마 세대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엄마의 고통스런 비밀을 진정으로 탐사해 보기로 한다. 탐사보도 기자로서의 그의 호기심과 진정성이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의 기억이 완전히 휘발되기 전에 톰은 어머니의 역사를 탐사하려고 서두른다. 놀랍게도 그의 탐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그가 싫어해 마지않았던 싱글맘 제니였다. 제니는 실종자 찾기의 전문가였다. 톰은 제니의 도움으로 그 시절의 밥 일병을 찾아 미국을 횡단하게 된다.
종전이 되고 미군이 하이델베르크에 진주했을 무렵 그레타의 나이는 열여섯이었고, 밥은 스물네 살이었다. 그들의 사랑에 미래의 약속 따위는 없었다. 그 시절 미국에서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과의 결혼이 금지되었다. 백인 여성을 쳐다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린치와 살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나가는 백인 여성에게 캣콜링을 했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 에밋 틸은 백인남성들에게 살해당했다. 밥은 미군 병사일 뿐만 아니라 스타더스트 클럽에서 연주하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했다. 독일 땅이라고 하여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에서 그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독일에서도 백인부대원들의 린치와 차별은 여전했다. 그가 백인 여성인 그레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백인병사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영창 신세가 된다. 짐 크로우 법이 관행처럼 유지되었던 1950년대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흑인으로 살아왔던 밥은 그레타처럼 미래에 낙관적일 수 없었다. 고달픈 하층 노동자 계급이라고 하더라고 백인 여성인 그레타가 미국 흑인들에게 가해진 인종차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인 여성으로서 그레타는 어땠을까? 전후 패전국 독일의 수치를 대신한 존재들이 가난한 여성들이었다. 국가는 여성들을 창녀화함으로써 자신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를 여성들의 몫으로 전가했다.
‘그레첸을 멀리하라’ 독일 여성들이 성병을 옮길 수 있으니까 만남을 금지한다는 것이 독일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에게 내려진 지시사항이었다. 그레첸은 그레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독일여성을 대표하는 보통명사이자 창녀의 다른 이름이었다. 2차대전 후 미군들이 주둔한 곳에서는 어디나 만들어진 것이 기지촌이었다. 한국에서 ‘양공주’가 있었다면 독일에서는 그레첸들이 있었다. 밥은 나중에 한국전쟁 기간에 청천강 전투에도 참전한 것으로 나온다.
미군 중에서도 흑인과 사랑에 빠진 그레타는 가족 안에서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 어머니 엠마와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 생환한 아버지 오토는 딸들에게 조국을 배신한 쓰레기 창녀들이란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웃들은 벽에다 ‘깜둥이의 창녀’라고 휘갈겨 놓았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하여 한통속은 아니었다. 가족 안에서도 히틀러 추종자이자 극우성향이었던 아버지 오토와는 달리 사위를 경멸했던 ‘외’할아버지 루드비히 샤브론스키는 사회주의자였다. 1차대전에서 간호사로 복무했던 상류층 출신 구스테 할머니는 할아버지 루드비히를 전쟁터에서 만났다. 구스테는 가난하고 애 딸린 홀애비에다 목발을 짚는 불구자가 된 루드비히를 따라서 외떨어진 동프레이센으로 이주할 만큼 사회주의자로서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품위 있는 여성이었다. 가난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방어막이 없었더라면, 강물에 뛰어들었던 그녀를 구해준 의사 몬데라스 씨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타의 자취를 밟아가다 보면 전쟁과 국가폭력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타자들의 도움으로 인간의 생존이 가능해진다는 엄연한 사실에 숙연해지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레타에게는 적어도 기댈 언덕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전후 흑백 혼혈아 4,800명은 브라운 베이비 프로젝트로 대부분 해외 입양가능한 흑인 가족에게로을 보내게 된다. 아동복지국은 양육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한 여성들의 아이들을 빼앗아서 해외로 송출했다. 국가가 프라이팬에 놓인 아이들을 불길 속으로 뛰어들도록 내몰았다. 독일뿐만 아니라 전후 많은 국가들이 가난한 아동들을 송출하는 뻔뻔한 범죄들을 저질렀다. 아일랜드, 잉글랜드, 독일 할 것 없이 전쟁고아나 빈곤층 아이들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로 입양 혹은 노동력으로 수출했다. 그레타의 딸 마리도 브라운 베이비 중 한 명이었다. 아동복지국에게 마리를 빼앗긴 그레타는 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죄의식과 분노와 광기를 가슴에 묻어둔 채 평생을 살았다.
그레타의 우울과 정신병력, 폭행과 감옥행, 자살미수, 칩거, 치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엄마의 과거 연인이었던 밥과 살아있다면 누나가 될 마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톰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된다. 이 모든 여정에서 제니의 도움을 받았던 톰은 싱글맘 제니와의 관계에서 자기 부모의 관계를 되풀이할 것처럼 보인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인생이란 여정의 끝자락에 선 치매 엄마가 언뜻, 언뜻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얘길 전부 받아쓰면 소설책 열 권도 모자랄끼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 이야기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얽어갈 것인가가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레첸을 멀리하라』는 역사적인 망각 속에서 건져낸 한 여성의 이야기보따리 속 서 말의 구슬을 잘 꿰어서 보석으로 만든 소설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