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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룬다티 로이는 ‘신이 창조한 신의 나라’라고 불리는 남인도 케랄라주로 황망히 돌아가는 중이다. 그녀의 어머니 메리 로이 부인의 부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의 신』의 주요 등장인물인 암무처럼, 그녀의 어머니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인 서른부터 심각한 천식을 앓아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고비마다 위험했던 어머니가 그 후로 육십 년을 더 살고 여든아홉 살에 세상과 하직했으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호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경이로운 한 세계와의 작별이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머니 메리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폭풍우 속 등대이자 구명보트였다. 그렇다고 모녀 사이가 헌신적이고 애정 어린 관계였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바로 그 점이 그들 모녀가 가진 특별한 힘이자 매력이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평생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애증의 굴레이자 글쓰기의 근원이었다. 아룬다티는 어머니의 죽음을 딸로서라기보다 “가장 매혹적인 주제를 잃은 작가로서 더 깊이 애도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후에 내게 오시는 어머니를 그녀는 작가이자 딸로서 새삼 다시 마주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조우의 결과물이 이 회고록이다.
어머니 메리는 배타적인 시리아(에서 전파된)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개종한 시리아 기독교도들은 전통 시대에는 힌두 카스트 제도와 결탁하여 상층 브라만의 지위를 지켰고, 근대 시기에는 영국 식민 통치의 문법영어 교육, 근대적 행정 개편, 플랜테이션 경영, 자본주의 농업을 재빨리 받아들여 자신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성공적으로 이어간 공동체였다. 그들은 힌두교의 정결 의식을 엄격한 계율로 수용하여 불가촉천민들에게 노출되는 것 자체를 오염으로 간주했다. 순혈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촉천민과 혼인 금지는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았고, 같은 땅을 밟지 않았으며, 같은 음식을 나누지 않았고, 같은 우물도 사용하지 않았다. 근대적 시각으로는 종교적 신념과 세속적 이해관계가 칡넝쿨처럼 뒤엉킨 이 카스트 제도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인간 따위가 가타부타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메리의 아버지이자 ‘나’의 외할아버지는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제국의 곤충학자로서 명망이 드높았지만 집안에서는 분노와 폭력을 거침없이 발산했던 폭군이었다. 바이올린에 재능있는 아내를 질투하여 바이올린을 부셔버린 가부장이기도 했다. 메리는 폭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자신에게 맨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 세상만사를 농담으로 대하는 안이한 태도에 질려서 그녀는 일찌감치 이혼을 감행했다. 시리아 기독교 집단에서 이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이혼하고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다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되돌아온 어머니는 가문의 수치이자 오점이었다.
이혼한 여성이 매춘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세상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는 시리아 기독교 집단의 트라반코르 상속법(딸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던 가부장적인 법)에 맞서 오빠 아이작과 다퉈서 결국 승리했다. 이 소송은 단지 어머니 개인의 승리일 뿐만이 아니라 인도 여성 인권의 역사를 확장한 일대 사건이었다. 어머니는 남녀 차별이 유별났던 시절에 인도 여성의 권리와 교육 개혁을 이뤄낸 투사이자 개혁가였다.
공적으로 존경받았던 사회운동가, 교육혁명가의 이면에는 끔찍한 어머니의 모습이 동시에 공존했다. 아룬다티는 자기 어머니를 “천재성과 기벽, 급진적인 친절, 투쟁적인 용기, 무자비함, 관대함, 잔혹함, 사업 수완, 사납고 예측할 수 없는 성미”를 마음껏 발산했던 ‘마피아’였다고 묘사한다. 회고록을 끝까지 읽으면 그녀의 어머니는 ‘마피아’라기보다 절대적으로 추앙받으면서 거침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이교도의 여사제 같았다. 독자의 눈으로 보자면 어머니는 자신이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 했던 상층 엘리트이자 섬세한 곤충학자임과 동시에 무소불위의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에게는 카스트 제도에 기반한 특권적인 기질과 정치적 급진성이 아무런 모순없이 공존했다. 어머니는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제국의 백인 선교사였던 매슈스 부인과 함께 로타리클럽 소유의 홀 두 개를 빌려서 학교를 세웠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어머니의 수완으로 학교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평등사상에 입각해서 남녀공학을 실시하고 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는 성적 순결에 관해서는 강박적이어서 디도가 순결을 잃고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총으로 쏴 죽였다. 디도는 외로웠던 아룬다티의 어린 시절 동안 함께 한 개였다.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자유를 가르쳤지만 ‘나’와 오빠가 평범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성적이 나빴던 오빠는 어머니의 가차없는 폭력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공적인 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힘없는 자식들에게 무자비하게 해소했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과 미친 열정에서 벗어나려고 열일곱 살에 가출하여 델리의 건축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자식에게 투자하는 어떤 투자금도 받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가출한 딸을 찾은 적이 없었다. 고생 끝에 건축학교를 졸업 후 ‘나’는 카스트 제도, 국가 권력, 힌두 민족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큰 것들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 끊임없이 사회, 정치적 목소리를 내게 된 과정과 개인사를 회고하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을 쓰게 된 자전적인 배경에서 보다시피, 가문의 수치였던 어머니의 딸로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룬다티는 대자연 속에서 헤엄치는 초록 물고기처럼 지내며, 함께 놀아준 불가촉천민들과 동류의식을 느꼈다. 그 시절 그들과의 연대는 후일 그녀가 사회정치 활동가이자 역사의식이 있는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불가촉천민인 벨루타의 비극을 이해하는 데 있어 케랄라주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낙살라이트마오주의자의 갈등은 주요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된다. 흥미롭게도 케랄라 주는 선거를 통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설 만큼 좌파 세력이 강력했던 곳이었다. 그런 현상은 카스트 제도의 억압과 착취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단 권력을 장악하고 기득권이 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함께 싸웠던 불가촉천민, 빈농으로 구성된 낙살파에게 등을 돌렸다. 카스트 제도에서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낙살파는 폭력 혁명을 선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 큰 것들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것들’을 상징했던 낙살파 벨루타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다. 현실에서 낙살파는 학살을 피해 숲속으로 피신했다. 아룬다티는 낙살파의 초대에 응해 몇 주간 위험을 무릅쓰고 동행한다. 그 몇 주간의 탐사보고서는 『동지들과 걷는 길』로 출판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일에 연루되어 있는지 몰랐으면서도 “이 나라에서 진짜 필요한 건 혁명인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비틀즈의 노래 〈렛 잇 비Let it Be〉에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머니 메리 내게 오시어” 만사를 순리대로 따르라는 지혜를 들려주었다면, 그와 달리 ‘나’의 어머니 메리는 순리로 통하는 큰 것들의 질서에 맞서 싸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로 인해 내 어머니는 어려움에 처한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폭풍우 속 등대이자 구명보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아룬다티는 실토한다. ‘나’가 비교적 쉽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은 누리지 못한 특권들을 어머니 덕분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 또한 아룬다티는 기꺼이 인정한다. 기숙학교에서의 영어 교육, 특권적인 신분, 무엇보다 탁월한 영어 구사력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혜택이었다.
아룬다티의 『작은 것들의 신』은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인도에서 금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나르바다계곡 댐 건설 반대, 인도의 핵무장 반대 투쟁 등에 가세하다가 감방에 가기도 했다. 영화 제작이라는 공동작업에서 벗어나 그녀가 처음으로 오롯이 홀로 썼던 『작은 것들의 신』으로 그녀는 단숨에 부커상을 받았다. 그녀는 작은 것들에게 가해지는 지상에서의 곤궁을 돌이켜보면서 부커상 상금으로 그들을 위한 후원 재단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 속의 인물들에게 윤리적으로 책임지려는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투사 활동가로서 아룬타티의 면모 또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작동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회고록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아룬다티의 오빠가 말하듯, 그녀는 삶을 예술로 만들었다. “다들 책 속 인물이 되고 싶어 하잖아. 자기 자신보다는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 넌 괴물들을 전부 괜찮은 사람들로 바꿔버렸어.” 이 회고록에서 그녀는 요즘 보기 드문 작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이상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너무 이상적인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부정적 이면은 없었을까, 라는 저급하고 심술궂은 호기심을 품은 채 나는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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