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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작가의 개인 작업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
인간과 동물, 그 얽힌 관계의 초상
2024년,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를 맞이했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곤 한다. 이제 동물은 단순히 기르고 사용하는 대상이 아닌 가족이자 친구로 여겨지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아끼고 또 그들과의 관계에서 소중한 감정을 교류하는 현상은 분명 동물이 지닌 특별한 힘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이야기 뒤에는 동물학대, 유기, 생태계 파괴 등의 불편한 현실이 숨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물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와 윤리적 고민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도덕성과 책임을 강조하며 동물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지금까지의 동물 담론이 그 모든 문제들을 파고들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남종영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의 책 『동물권력』2022은 인간이 동물에 대해 갖는 사랑과 책임감, 통제욕과 욕망이 얽혀 만들어내는 복잡한 권력관계를 파고들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한다. 우리는 정말로 동물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동물은 여전히 인간의 세계에서 이용 대상의 자리에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종영 작가와의 이번 인터뷰는 이러한 경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새로운 사고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남종영 작가는 환경과 동물권이란 주제에 천착하는 논픽션 작가이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 21년간 한겨레 신문사에서 환경 전문 기자로 일했으며, 2023년 10월 기자직을 떠나 전업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저널을 포함하여 오랜 시간 환경 논픽션 글을 써왔으나 현재는 한겨레 신문에 소설 「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도 연재 중이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문지리학을 공부한 이후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철학적 관점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조명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북극곰은 걷고 싶다』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그리고 『동물권력』 등이 있으며 모두 인간과 동물의 관계, 환경 문제, 그리고 동물권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라디오 출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환경과 기후 이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동물권력』은 2023년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저술상을 수상했다.
인터뷰어 소개
강유진(중어중문학과 24)
대학에서의 첫 1년간 주된 고민거리가 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지금까지 내게 익숙했던 체계, 혹은 편견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수많은 차원과 경계선이 있었음을 수업과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이 수많은 시각을 직접 시도해보며, 학문에 임하는 이유와 방식을 고민해가는 것이 내 대학 생활의 작은 목표이다.
강혜운(생명과학부 24)
숫자와 데이터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명확성과 효율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윤리는 그 숫자가 만들어내는 결정과 결과가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숫자가 지침이라면, 윤리는 그 지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이라고 볼 수 있죠.
이서아(인류학과 24)
대학교 새내기 시절을 보내며 이제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해 왔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향후 어떤 진로를 가지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대학에 와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도 동물권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생겨 큰 보람을 느낀다.
이진양(인문계열 24)
세상엔 탐구할 것들이 아직 너무도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름다움 자체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느낀다. 또 내가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몸으로 부딪히며 탐구하고 또 발견할 것. 대학생활의 목표는 이것으로 정했다.
최연우(소비자학과 24)
어디에서나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동물을 사랑하는 단순하지만 진실된 마음에서 큰 힘을 받았다. 이는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소중한 마음들을 알고 싶다는 전율이기도 했다. 이 뜨거운 경험이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1
다양한 매체로
동물권을 이야기하다
Q1.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진양
첫 번째 질문은 작가님에 대한 것인데요, 환경 논픽션 작가라고 소개글이 나와 있더라고요. 『동물권력』 외에도 『고래의 노래』 등의 저서를 쓰시면서 공통된 주제에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주셨는데, 그런 주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남종영
저는 환경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원래 기자였어요. 2001년부터 한겨레 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는데, 기자들은 여러 분야의 기사를 일정 기간에 따라 바꾸면서 쓰거든요. 그렇게 부서를 옮기던 중에 저는 환경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였어요.
2004년쯤인데, 도시를 하나의 생태계로 본다면 길고양이는 도시라는 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인간과 관계를 맺을까에 관한 기사를 썼었죠. 그때는 길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안 부르고 도둑고양이라고 부를 때예요.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존재였고 캣맘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어요. 근데 그 기사를 쓰고 나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간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동네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있었고, 제가 기사로 씀으로써 그분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던 거죠. 저널리즘의 역할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가시화돼 있지 않은 것들을 가시화하는 것이거든요. 그 사건을 계기로 동물 기자로서 저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동시에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에도 관심이 생겨서 북극, 적도의 투발루, 남극까지 2005년에서 2007년까지 2년에 걸쳐 쭉 여행했어요. 제 눈에는 사람보다 동물이 잘 보이더라고요. 북극과 남극, 적도를 여행하며 저는 고래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게 수족관에 갇혀 있는 돌고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제가 고래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거죠.
사실 기자는 100을 취재하면 그중에 기사로 쓰는 건 10밖에 안 돼요. 저는 버리는 90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남은 자료들을 차근차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주말에는 항상 논픽션 글을 썼던 거예요.
인터뷰어는 기자의 업무와 작가의 작업이 융합되고 또 전환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특히 ‘버리는 90’을 활용한 접근은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일 처음 쓴 책이 『북극곰은 걷고 싶다』라는 책인데, 지금까지 18쇄 정도 찍은 스테디셀러예요. 그 책 덕분에 '책 쓰는 게 재밌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에 『고래의 노래』도 쓰고,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도 썼어요. 또 작업을 이어가는 와중에 관심이 생겨서 영국으로 석사를 하러 갔는데 그때 얻은 공부한 인문학 지식을 빌려 『동물권력』을 썼고, 최근에는 고래 개론서인 『다정한 거인』도 새로 썼어요. 작년에는 아예 기자를 그만두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런 주제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란, 환경운동가나 동물운동가로서의 특별한 열정이나 소명의식이라기보다는 저만의 ‘재미’였고, 글의 원동력 또한 호기심과 탐구욕이었어요. 한마디로 동물에 대한 덕질이랄까요.
작가로서의 동력은 소명의식보다는 ‘재미’와 ‘덕질’이었다는 점! 이는 한 분야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Q2. 기사, 논픽션, 픽션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한 이유는?
이진양
아까 기사는 가시화되지 않은 걸 가시화하는 작업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작가님께서 쓰시는 논픽션도 기사와 같은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 건가요?
남종영
그렇죠. 그러니까 기사의 확장판이 논픽션이에요. 기본적으로 기사 또한 논픽션 글이지만, 기사는 몇 가지 형식으로 장르화가 돼 있어요. 음식점으로 비유하자면 빵집에 갔는데 빵 종류가 한 5개 정도밖에 없는 거예요. 반면 논픽션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빵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거죠. 기사는 쓸 수 있는 장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세계의 다양하고 중층적인 갈등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사실 많아요. 이를테면 기후변화에 대한 기사를 쓰려면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수많은 수치들, 그 어려운 숫자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거예요. 또한 기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쓰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써야 된다는 점도 제약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사 외에 논픽션이라는 장르를 계속 써왔어요. 논픽션은 형식의 측면에서도 기사보다는 훨씬 자유롭죠. 개론서처럼 쓸 수도 있고, 『동물권력』처럼 에피소드별로 쓸 수도 있고,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처럼 서사가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써 구성해 볼 수도 있어요.
글쓰기, 특히 픽션 창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터뷰어는, 그렇다면 동물권이란 주제를 픽션으로 옮긴다면 어떤 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남종영 작가는 혹시 픽션에도 도전해 본 적 있을까.
이진양
혹시 픽션 쓰기도 시도해 본 적 있으세요?
남종영
픽션을 얼마 전까지 썼어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관』이라고 한겨레 21에서 연재를 했었어요. 계속 논픽션으로 쓰자니 그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픽션의 서사를 조금 빌려와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어요. SF소설은 과학적 사실의 고증이 철저하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저는 사실 그대로를 인용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그 위에다가 서사를 얇게 덧입히는 방식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되는 장르글을 만들었어요. 이제 거의 책 한 권 분량이 되어서 내년 상반기쯤에 단행본으로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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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은 경계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Q3.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동물의 범위란?
이진양
저희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게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권리 혹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동물의 범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남종영
『동물권력』에서 말하는 권력이란 ‘Right’가 아니라 ‘Power’에요. 예를 들어보죠. 노동자는 권력이 있어요. 일상에서 노동자가 권력을 행사한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은 노조를 만들거나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력이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자본가가 노동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예요. 이 ‘power’의 속성에 대해 철학자들이 아주 많은 연구를 했어요.
여기서 남종영 작가는 ‘권력’을 단순히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힘으로 보지 않고,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의 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권력 개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흥미로운 접근이다.
우리는 보통 권력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철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결국 권력이라는 건 하나의 밀고 당기는 힘인 거예요. 누구도 자신이 가진 권력을 100%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할 수 없어요. 파워라는 건 항상 밀당을 통해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행사되고, 수용되거나 저항을 받습니다. 권력의 개념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 집 아들도, 우리 집 강아지도 권력이 있고 다른 모든 동물들도 권력이 있는 거예요. 이 책의 논점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배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왔지만, 사실은 동물과의 밀당 속에 존재하며 작용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 역시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이 모든 권력관계 속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증거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는 작업을 한 겁니다. 브리스톨대학교 대학원에서 동물지리학이라는,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와 동물을 어떻게 규정해야 될 것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을 공부했는데, 그때 배운 관점을 적용하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된 건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를 쓰면서부터였어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야생 방사하는 과정을 제가 가까이서 지켜봤거든요. 그 과정을 논문으로 쓰기 위해 교수와 여러 차례 논의하며 내렸던 결론은, 우리 인간이 돌고래를 포획하기도 다시 방사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행위에는 인간의 의사뿐 아니라 돌고래의 권력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거였어요.
정리하자면 권력은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권력이 있고 없고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우리 인간과 교감을 많이 하는 종일수록 권력은 크겠죠. 반면에 바퀴벌레 같은 경우는 별로 권력이 없고요.
그렇다면 바퀴벌레처럼 인간과 교감이 적은 동물이 가진 권력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한가? 인간의 인식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우리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동물-권력을 존중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또 일반적으로 여러 동물권 철학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고 보고 있어요. 현재 상황으로서는 그게 가장 합리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과학이라는 학문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며 기존의 가설이 수정되므로, 어떤 종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한 기준도 그에 따라 변화할 수 있겠죠.
그래서 어디까지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확정된 답이 있다기보다는 최신의 과학적 지식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철학적 사유를 해나가며 경계를 설정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물권력』을 읽으며 한편으론 인간인 우리가 생태계 속에서 가지는 지위는 무엇이며 우리가 동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지 궁금해졌다.
Q4. 생태계 속 인간의 지위는?
이진양
생태계에서 인간의 지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인간이 생태계의 다른 동물과 똑같은 한 구성원으로 보기에는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남종영
그쵸. 그래서 인류세라고 하잖아요. 인간이 지구의 물리화학적인 시스템까지 지배하는 시대가 됐어요. 저는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 훌륭하니까 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는 입장이 있고, "우리는 특출났지만 그로 인해서 기후위기를 불러왔어, 그리고 우리는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라는 입장이 있을 것 같아요. 전자 같은 경우는 아마 기술이나 자본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겠죠. 근데 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면 인간 내에서도 빈부 격차가 더 커질 수 있고 생물종들은 더 고통을 많이 받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좀 겸손한 시각에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사회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하겠죠. 저는 그렇게 기후위기를 보는 입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거든요. 이 두 입장이 인간을 보는 관점은 서로 다르죠. 저는 후자에 속해있고요. 그렇다고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이진양
그러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할 특수한 태도나 관점, 윤리가 따로 있다고 보시나요?
남종영
그렇죠. 모든 윤리가 다 그런 거죠. 우리는 원숭이가 무슨 윤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윤리가 있어요. 최근 동물행동학을 보면 그들 사이에서도 원시적인 윤리와 도덕이 있긴 있지만 우리가 거기까지 신경 쓸 수는 없잖아요. 일단 우리가 환경과 기후를 어떻게 봐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까 두 가지 관점으로 한번 나눠본 거죠.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공리주의 시각, 고통에 기반해서 보는 시각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3
이 책의 의의,
그리고 ‘포스트 휴머니즘’
Q5. 저자가 생각하는 ‘동물권력’의 의의는?
이진양
이제 저희가 준비한 질문이 마지막을 달려가고 있는데요. 이 책의 기록에 어떤 의미가 있다거나 아니면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마주했으면 하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남종영
제가 동물 권력이라는 책을 쓴 건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 세계를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동물들도 같이 구성하고 있고 역사를 만들어 왔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동물을 보호하자" 같은 얘기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고, 그 렌즈를 독자들이 하나씩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저자와의 인터뷰 중 자연스럽게 ‘포스트 휴머니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동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기반이기도 한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에서는 지금까지의 인간중심주의 담론에서 벗어나 동물 입장에서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우리는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을 이해하고 나서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Q6. 포스트 휴머니즘 논의에 대한 질의응답
이서아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아까 인간과 더 가까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권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이런 상황이 어떻게 보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차별적 대우나 모순적인 태도랑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이런 태도가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작가님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남종영
달라져야죠. 이른바 ‘개빠’라고 하잖아요. ‘개빠’는 자기 강아지한테만 너무 잘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인데요. 우리 강아지한테 비싼 헤어도 해주고 9900원짜리 케이블 TV도 보여주고 유기농 사료도 주는 거죠. 돈이 많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만 그게 윤리적으로 옳을까요? 이를테면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사는 동물들도 많은데 만약 그가 조금 더 사려 깊었다면 그 돈을 동물단체에 기부를 하는 게 더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브뤼노 라투르라는 과학 철학자가 있어요. 브뤼노 라투르나 도나 헤러웨이의 관점을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동물 권력도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에요. 기존의 책이 주로 피터 싱어나 톰 리건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책은 포스트 휴머니즘적 철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거라서 조금 낯설죠. 우리나라도 원래는 피터 싱어와 같은 전통적인 동물 철학 중심이었는데 최근 1~2년 사이에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어요.
포스트 휴머니즘은 탈인간 중심주의라고 하죠. 이런 동물 문제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사이보그 같은 분야에서도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이 많이 연구되고 있어요. 이를테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마음이 생길까, 마음이 생기면 얘네한테 권리를 줘야 될까, 그 전 단계의 논의가 동물에게 권리를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인공지능의 권리까지 논하게 될 것이니까요.
강혜운
그러면 새롭게 제시한 포스트 휴머니즘적인 논의는 기존의 고통 최소화와는 별개의 논의인 건가요?
남종영
그건 아니죠. 아직은 고통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철학은 너무 고통에 매여 있었죠. 공리주의자들 보면 쾌고 감수라고 해서 고통과 즐거움을 양팔저울로 달아서 더 큰 값을 택하는 거잖아요. 그런 공리주의가 동물 철학으로 왔을 때, 즐거움 같은 긍정의 감정은 거의 신경 안 쓰고 고통을 줄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동물 운동이 대부분 고통에 빠진 동물을 구조하는 것이었어요. 근데 이런 철학적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우리는 길고양이를 중성화하잖아요.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거든요. 인간들과 어울려 살려면 중성화를 통해 번식을 조금 제한시켜서 사람들에게 주는 혐오감을 줄이자는 측면에서 나온 게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인 거거든요. 그래야 길고양이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이게 전통적인 동물 철학에서 나온 솔루션인 거죠. 근데 한편으로는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니까 너무 힘들지만 보람 있고 행복한데, 길고양이한테 그런 행복을 빼앗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럼 그때부터 이제 입장들이 엇갈리는 거죠.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에서는 ‘지금까지는 인간의 담론 체제에서만 봤는데, 한번 떼어내서 동물 입장에서 보자’라고 주장할 수 있겠죠.
최연우
책의 모든 이야기가 탈인간주의의 관점으로 본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조금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남종영
그렇죠. 기존의 휴머니즘적인 동물운동은 '우리가 동물의 구원자야.' 이거거든요. 어차피 동물들은 우리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죠. 탈휴머니즘은 그러한 틀 자체에서 최대한 벗어나자고 보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강혜운
근데 그런 식으로 틀에서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남종영
맞아요. 포스트 휴머니즘이나 탈근대의 문제점이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그럼 뭘 해야 되지?'라고 하면 마땅치 않은 거예요. 그래서 도나 헤러웨이 같은 경우도 ‘관계적인 정의’를 이야기 하는데 "그냥 친절하게 대하는 것 말고는 뭔 얘기지?"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어요.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부족하긴 하지만, 반려견 순찰대라고 하는 사업이 있어요. 각 동네에서 반려견하고 반려견 보호자하고 한 쌍씩 모여서 한 팀을 만들고 경찰이랑 밤에 동네를 순찰하는 거예요. 이건 우리 공동체에다가 동물을 포함시켜서 일을 주는 새로운 접근, 포스트 휴머니즘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비둘기가 지금은 뭐 날아다니는 돼지잖아요. 옛날에는 상당히 유용한 존재여서 사람들이 존중하기도 하는 존재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날아다니는 돼지가 돼버렸죠. 도나 헤러웨이가 극찬한 과학 실험 프로젝트가 비둘기에다가 미세먼지 측정 장치를 다는 거였어요. 사실 미세먼지 측정기가 구청 옥상이나 어디 산 위에 붙어 있어서 정확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비둘기는 인간이 사는 곳을 돌아다니니까 훨씬 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걸 고안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예요. 사람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주고자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하고 그리고 비둘기 애호가가 같이 이 프로젝트를 한 거죠. 우리는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는 비둘기를 유용한 존재 혹은 우리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죠. 근데 역설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동물단체는 ‘동물학대’라며 반대했어요. 그 얘기도 일리가 있죠. 그래서 이걸 고안한 예술가는 "무겁지 않다, 걱정 마라."라고 했는데 인간을 위해서 동물을 이용하는 거에 대해서 전적으로 반대하는 동물단체는 반대를 한거죠. PETA가 급진적인 동물단체인데 그걸 어볼리셔니스트라고 불러요. 인간을 위한 동물의 사용에 대해서 다 반대하는 입장이거든요. 그것도 일리는 있지만 거기는 휴머니즘 철학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그래서 저는 이런 새로운 실험들이 좀 많아져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요. 기존 구조 중심의 운동보다는 좀 더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운동이 있어야하는 거죠.
강유진
그런데 이 공동체 안에 끌어들여서 동물이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도 결국에는 인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것이 어떻게 탈인간으로 갈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남종영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탈인간이라고 해서 우리가 동물하고 똑같은 위치를 가지자는 건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동물들의 입장을 한번 되짚어보자는 거죠. 아주 혁명적으로 바뀌는 걸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강유진
그렇다면 앞서 말씀해주신 사례는 이 책의 11장에서 쓰신 이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활용한 군용 비둘기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남종영
군용 비둘기랑 미세먼지 측정 비둘기랑은 좀 다르겠죠. 이건 일단 예술가의 실험적인 프로젝트니까 상업적인 취지는 아니었죠. 반면에 군용 비둘기 같은 경우는 비둘기들을 전쟁에서 바로 죽을 수 있는 그런 위험 속에 놓은 거잖아요. 미세먼지 측정 비둘기는 완전히 전쟁이나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이 아니니까 다르기는 하지만 시각을 확장하면 결국 인간의 수단으로서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지적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인기를 끌면 분명히 상업화가 될 거고 그 비둘기들은 또 불행에 처해지겠죠.
이서아
동물원이 옛날부터 많이 이슈가 됐었잖아요. 근데 이것도 포스트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에게 어떤 볼거리, 재미나 경험을 제공 하는 것으로써 동물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건가요?
남종영
그 질문을 만약에 포스트 휴머니즘 동물 연구하는 사람한테 한다면 되게 난처해하겠죠.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은 동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이 상업화되지 않고 또 많은 고통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정한 지점을 찾아야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해답을 줄 수 있는 게 과학이죠. 이를테면 북극곰이나 돌고래나 유인원들을 가둬서 키운다는 건 명백하게 윤리적으로 잘못이겠죠. 근데 사슴 같은 초식들은 사실 스트레스 많이 안 받거든요. 동물원이 그렇게 좋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시 부적합종부터 없애는 것 같은 노력들을 할 수 있겠죠.
강혜운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과학에 기반한 고통을 줄이는 일밖에 없는 건가요?
남종영
그건 당연히 해야 되는 거고요. 제 이야기는 아까 반려견 순찰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좀 하면 좋겠다는 거에요.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자들이 고통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다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최근에 마사 너스바움이라는 유명한 법철학자가 ‘동물을 위한 정의’라는 책도 냈는데 그 사람은 새로운 이론을 내비치죠. 역량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비유를 해요. 인도 가난한 마을에 사는 여성이 이혼할 권리가 있을까요?
모두
아니요.
남종영
근데 법적으로는 있잖아요. 그게 역량 이론이에요. 그 여성은 이혼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는 거죠. “기존의 법은 범죄나 폭력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방어해 주는 것에 그쳤기에 그것은 제대로 된 권리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인 처우를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그에게 진짜 권리를 주는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해요.
그걸 동물에 대입한다면 이렇게 되죠. 옛날에는 고통만 줄여주는 게 그 동물에게 권리를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게 아니다. 그 동물의 본능적이고 사회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바로 동물권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에요. 기존의 근대 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고통이라는 수동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마사 너스바움은 종별 역량 목록이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각 종병을 종별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동물권을 주는 것인지를 헌법에 반영을 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기준을 정해야한다는 그랜드한 플랜을 내세워요.
근데 그 사람이 요즘 철학자 중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유명한 사람이에요. 지금 동물권 논의가 여러 철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뛰어들 정도라는 거죠.
우리는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미세먼지 측정기를 매단 비둘기, 반려견 순찰대 등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동물의 구원자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동물을 포함시켜 역할을 부여하는 포스트휴머니즘적인 시각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과연 고통에만 집중한 기존의 동물권 논의에서 벗어나 동물에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으로 동물을 위한 길일까?
동물이 가지는 ‘권력’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이 당연해졌다. 우리에겐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익숙해진 것이다. 남종영 작가는 책 『동물권력』을 통해 이 세계를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동물들도 함께 구성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도 권력, 즉 영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동물은 보호해야 할 존재" 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기존의 동물권론조차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물은 역사 속에서, 현실에서 수동적인 피해자,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도 주체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권력’이 있다. 이렇게 인간-동물의 관계를 재정의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모여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남종영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물의 다면적 삶을 독자들이 이해하길,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독자들이 하나씩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단순히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된 사람들은 포스트 휴머니즘에 기반한 동물권의 새로운 논의를 접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번 인터뷰가 그런 경험이 되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권력』이 그런 소중한 경험을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 인터뷰어: 강유진·강혜운·이서아·이진양·최연우, 정리: 이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