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있다면 말이죠.
우리는 모두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읽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에도. 그래서 다들 ‘진짜 소설가’를 실제로 만난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다. 소설가에게 ‘소설 쓰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어쩌면 문학상 수상의 비법을 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석경
소설을 쓰시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심재천
2달 걸렸어요. 6월 16일에 시작해서 8월 말쯤 끝났어요.
의외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작가의 손에 모터라도 달렸나 보다.
이석경
미리 줄거리를 짜놓으신 건가요?
심재천
네. 호주여행에 관해 미리 써둔 게 있었어요. 거기에 토익을 끼워 넣고, 다른 습작에서 몇 개 따오고, 그렇게 해서 빨리 쓸 수 있었죠. 제목도 미리 정해뒀죠. 어떻게 하면 튀는 제목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게 생각나네요.
김봉준
평소 메모 같은 걸 많이 하시나요?
심재천
네. 소설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써놓아요. 습작생활을 하면서 더 그렇게 했어요. 약간 정신병자처럼 (웃음) 밥 먹다가도 써요. 묘사까지는 아니고 떠오르는 영감 정도를 써요. ‘아, 이건 소설이 되겠다’ 싶은 것들이죠. 소설을 처음 쓰는 거였으니, 메모는 저에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어요. 처음엔 고백하듯이 글을 썼어요. 내가 얼마나 핍박받고 있는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굉장히 추하고 일그러진 작품이 나와요. 그래서 그런 사태를 방지하려고 ‘이실직고하는 형태로 쓰지 말자’고 적어두기도 했고요. 좌충우돌 몸부림치는 모습이었죠.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나의 결과물을 내려면 숱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자신을 더욱 다듬으려는 신인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심 작가에게 ‘소설가’, 또는 ‘소설’이란?
김봉준
소설가라는 직업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인가요?
심재천
사실 운이죠. 전 취직을 4번이나 해봤기 때문에 더 이상 직장생활은 못하겠어요. 글 쓰는 중에도 두어 번 정도 경력직 기자로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는데 조직생활은 더 이상 못 하겠어서 거절했어요. 망할 때 망하더라도 제가 직접 쓴 걸로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회사가 중간에 끼어있지 않고 소비자 혹은 독자들 제가 직접 쓴 걸 직접 출판해서 제 생활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글을 계속 썼던 거지요.
이석경
원래 하고 싶은 일이 글 쓰는 일이셨나요?
심재천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돈 버는 일에는 별로 욕심이 없었어요. 글 쓰면서 한량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돈 벌러 다녔는데 잘 안 됐어요. 경제학과도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그냥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내 길은 아니다 싶고, 성적도 안 좋고. (웃음) 저는 평점 2.57로 졸업을 했는데요, 이 성적으로는 취직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시험 쳐서 신문사에 들어갔고요. 신문사에 들어가기 전에 세 군데에서 직장생활 했어요. 해외영업사원, 자동차회사영업 등등. 직장생활도 잘 안 됐어요. 힘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묘하게도 우리들의 공감을 샀다.
김봉준
저도 학점이 안 좋아서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김다은
저도 사실 경제학부가 적성에 안 맞아서. (웃음)
심재천
다들 어리잖아요. 20대 아니에요?
김봉준
전 30대입니다.
심재천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사는 거죠.
심 작가는 소설가가 되기까지 상당히 먼 길을 돌아갔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보내고 지금은 원하던 소설의 길에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작가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심 작가의 모습은 아직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를 비롯한 많은 청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심 작가 본인이 인터뷰 내내 강조했듯이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그 메시지란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가로서 그의 이야기는 지금 많이 방황해도 언젠가는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김봉준
소설가로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이나 기대치가 있지 않은가요. 거기에 맞추려 하다 보면 저항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심재천
고민 많이 했어요. 많이 흔들리기도 했고요. 출판사나 독자의 기대에 맞춰서 써야 하는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되는지 갈림길에 서 있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요. 베스트셀러가 될 생각은 없어요. 인기작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 생각을 갖고 쓰니까 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더라고요. 글 자체도 잘 안 나오고. 살아온 길이 비주류였기 때문에 지금부터 주류가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웃음) 평론가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도 버리려고요.
김봉준
하지만 이번에 심사위원의 기준에 맞춰서 입상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순간에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심재천
내가 던지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는 분들만 읽어주시면 된다, 스스로 그렇게 한정을 지었어요. 때문에 그런 건 크게 문제가 안 될 듯해요. 문학상이니 이런 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일단 등단은 했기 때문에 독자들만 봐주면 돼요. 책만 낼 수 있으면 된다는 거죠. (웃음) 대형작가니 하는 욕심만 버리면 얼마든지 단출하게 살 수 있겠죠.
이석경
좀 외람된 말씀이지만 문학 자체를 위해서 글을 쓰셨는지, 다른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문학을 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재천
저는 (틀에 박힌 듯) 짜임새 있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멍청한 소리를 많이 해요. (웃음) 인간이 그렇게 세련되고 고상하고 잘 짜여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제 속이 좀 멍청하고 방탕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고 비논리적이고 해요.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데, 문학적으로 잘만 승화시키면 굉장히 좋은 문장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런 훈련은 받지 않았어요. 제 안에는 청순한 것들도 많지만 (웃음) 삐뚤어지고 뒤틀린 것들을 정면에 내세워서 말을 해요. 제가 아직까지는 그런 수준이에요.
심 작가의 독특한 문학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나의 토익 만점 수기』에서는 짧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돋보였다.
심재천
기자 문장이죠. 문단 앞에 중요한 문장이 나오는 기자식이에요. 기자생활을 한 제 경험에서 나왔죠. 첫 문장에서 문단에 대한 방향을 거의 다 제시하고 있어요. 보통 작가들은 점진적으로 진행해서 요소들을 섞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방식이 안 맞았어요. 제가 감질 나는 것을 싫어해요. (웃음) 소설작법에 좀 위배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끌어간 점과 지나치게 바람 잡지 않았던 점 때문에 빨리 읽혔을 거예요. 쓸데없는 묘사를 빼고 써도 소설이 될 수 있어요.
김봉준
확실히 대학교 문학 교양강의에서 교수님이 작품을 묘사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평가하셨던 점과 대조됩니다.
심재천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면 되죠. 오히려 교본이나 정통양식에 묶여있으면 좋은 글을 쓰기 힘들어요.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게 좋아요.
심 작가는 기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작법을 과감히 소설로 끌어들였다. 글을 건조하게 만들어 문학적인 분위기를 떨어뜨렸다고 평가하든지, 깔끔하고 거침없는 전개로 ‘읽는 맛’을 더했다고 평가하든지, 어느 쪽이 맞든 그만의 독특한 작법이 소설에 개성을 불어넣어준 사실은 틀림없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가 신선한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일 터였다.
김봉준
글은 잘 읽히는 반면에 내용은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김다은
내용자체가 현실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정작 사건이나 전반적인 흐름이 현실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재천
말도 안 되죠, 사실 (웃음) SF인데.
김봉준
그래도 읽기엔 편하고, 메시지도 잘 전달되던데요.
김다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김봉준
이걸 유지해 가실지 궁금합니다.
심재천
소재 나름이지요. 토익을 소재로 황당하게 비틀어 보고 싶었기 때문에 다소 비현실적으로 썼어요. 이런 식으로 황당하게 써야 잘 어울리는 소재가 있어요. 반면에 사실적으로 써야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소재도 있고요. 습작하는 기분으로 어떤 소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발견해가면서 쓰고 있어요. 아직 배우고 있습니다.
이석경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심재천
곰브로비치1)를 좋아해요. 잘 안 알려진 작가죠. 『페르디두르케』, 『포르노그라피아』가 대표작인데 아주 엉뚱한 작품이에요. 독자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작품이죠.
김봉준
비현실적인 작품이라는 의미신가요?
심재천
그건 아니에요. 인간의 ‘열등함’, ‘미성숙’을 탐구하는 작품인데 읽기에 좀 괴로울지 몰라요.
이석경
다른 좋아하는 작가가 더 있나요?
심재천
황정은2)씨 작품을 좋아해요. 일본 작가로는 다카하시 겐이치로3)를 좋아해요. 제가 습작할 때 이 작가한테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아쿠타가와4)도 있는데, 단편들이 정말 고전이죠. 이 작가 작품은 밑줄을 쳐가며 공부했어요. 프랑스 작가 셀린5), 그리고 미국 감독 자무쉬6)의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길만 가는 사람들이에요.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죠.
주류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대로 나아가는 작가들이 심 작가가 참고한 표본들이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마이너’라고 했다. 그 말대로다. 심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금 흔들리더라도 자신의 길을 갈지언정 무작정 대중을 따라나설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진 심 작가가 소설계에서 펼칠 행보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1) 비톨트 곰브로비치. 폴란드의 소설가, 극작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하는 동안 초현실주의 작품을 많이 썼다. 전위적인 유대계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하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2) 한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 등이 있다.
3) 다카하시 겐이치로. 일본 히로시마현 출신 소설가. 1981년 첫장편소설인 『사요나라 갱들이여』로 군조신인장편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