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 혼자 산다』라는 혼자 사는 남자의 생활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 중입니다. TV 속 남자들은 혼자서도 요리 등 집안일을 잘하고 혼자인 삶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러한 1인 가구의 삶을 다룹니다. 전국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입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은 1인 가구의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혼자 사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혼자 살기에 대한 과도한 낭만이나 오해 섞인 두려움을 버리고 혼자 사는 사회가 눈앞에 와 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역할밀도가 높아지고 자기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역할밀도는 타인의 기대가 정의하는 자아이며 자기밀도는 자신이 주체로서 형성하는 자아입니다. 결국, 혼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타자와 자기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연적인 욕구입니다. 이 책은 혼자 산다는 것이 고립이 아니라 대안적 삶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노명우 작가님과의 만남은 광화문의 조용한 북카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노명우 │ 작가
날씨도 더운데 광화문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책은 재밌게 읽었나요? 대학생이 읽기에 어렵지는 않았나요?
노기완
아니요. 오히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희 모두 혼자 산다는 것에 막연히 환상만 갖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1인 가구의 삶이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고 흥미로웠고요.
노명우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질문해주세요.
하승연
감사합니다. 우선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관해 느낀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한국사회가 싱글을 나쁘게 바라보고,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강요한다며 이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아직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는 우리 사회가 딱히 결혼을 강요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독신으로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께서 우리 사회가 결혼을 강요한다고 느끼시고 이를 비판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노명우
저는 대한민국이 특정 연령대의 사람이 해야 하는 표준행동을 다른 나라보다 엄격하게 정해놓았다고 봐요. 대부분 사람이 남과 비슷한 형태의 삶의 단계를 밟아가죠. 우리는 특정 시기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만 19살에서 23살 사이에 대학교를 다니고, 20대 중후반에 취업을 준비해요. 여러분 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다니지 않고, 시간이 더 흐른 후 인생의 다른 시기에 대학생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 있나요?
황명관
아니요. 그러고 보니 N수를 하지 않는 이상 대학은 당연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명우
그렇죠? 많은 사람이 당연히 대학은 20대 초반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다른 나라도 그럴까요? 물론 대부분 나라에서 대학생은 20대 초반인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른 나라에는 수많은 예외가 존재해요. 반면 우리나라는 여지가 매우 좁죠. 저는 결혼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나라가 다른 열린 사회와 비교했을 때, 결혼 문제에 여지를 두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결혼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성을 갖기에 남보다 이른 나이에 대학을 가거나 30살쯤에 갑자기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결정을 내릴 여지가 적죠.
하승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한국사회는 다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혼자 사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약간은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 하에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른바 ‘화려한 싱글’의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라하지 않은 멋진 싱글이 되기 위해 하시는 특별한 활동이 있나요?
노명우
딱히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저씨’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 싫었어요. 한국에서는 나이 든 남자가 ‘아저씨’가 아닌 ‘멋있는 중년’인 경우가 드물잖아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의문을 품었죠. 늙는 게 두려웠다기보다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가 되기 싫었어요. 여러분은 부모님과 오랜 세월 함께 생활했기에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의 ‘아저씨’, ‘아줌마’ 같은 모습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중년을 보면 왜 저렇게 행동할까 하고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나이 많은 아저씨는 느끼하고 음흉하다는 인상을 주죠. 그래서 저는 화려한 싱글이 되겠다기보다는 손가락질받는 아저씨는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해요.
허주현
공감해요. ‘아저씨’나 ‘아줌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멋있게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떠오르거든요.
노명우
아저씨가 지니는 어떤 요소가 사람들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게 할까요? 저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과 달리 신체가 약해지는 등의 상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상실감을 느끼잖아요. 중년이 될수록 자주 상실감을 경험하는데,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이를 덮고 헛헛한 마음을 다스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흔히들 말하는 ‘꼰대 짓’이죠. (웃음) 젊음은 잃었지만 잃음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거죠. 나이 든 사람은 당연히 젊은 사람보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죠. 이걸 자꾸 자랑하는데, 남이 이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요. 아저씨나 아줌마가 식당에서 괜히 종업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노기완
저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될까 봐 겁나는데요. (웃음)
노명우
그렇죠. 나이를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하거든요. 희한하게도 나이가 들면 오래전 일도 엊그제 같이 느껴져서 그래요. 일부 어른은 머릿속에 있는 주관적 시간 개념 때문에 오늘날의 대학생과 얘기를 하는데도 몇십 년 전 대학생의 경우에 비추어 충고하기도 하죠.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상황과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혼자만의 착각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굉장한 차이가 있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현재를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해요. 자기가 기억하는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다르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현재가 어떤 모습인지 눈 크게 뜨고 살펴야 하는데, 현재를 잘 안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죠. 저는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추해지지 않나 싶어요.
허주현
정말 공감해요. 과거와 현재가 많이 다른데도 요즘 젊은 사람은 왜 그러냐며 쓴소리만 하시는 분도 있으니까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면 일본과 스웨덴 모두 1인 가구 수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폐쇄적이고 비사교적인 삶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반면, 스웨덴은 삶의 질이 전혀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의 1인 가구는 사회와 접촉하지 않는 고립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접촉이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은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사회제도를 갖추었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를 막아야 하는 문제로 보는가, 아니면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가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고 우리 사회도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승연
이번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질문인데요, 혼자 살지는 않더라도 고등학생이나 직장인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가족과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노명우
저는 혼자 사는 것은 하나의 ‘조건’이지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것을 나쁘게 평가하기 쉬운데, 이것은 단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환경일 뿐이에요.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은 옳지 않다고 봐요.
하승연
혼자 산다는 것은 삶의 한 모습일 뿐이기 때문에 옳은지 그른지 평가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뜻이군요. 그런데 정말 혼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직업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는 여성도 많습니다. 여성 법관의 대부분이 미혼이라는 기사도 있었고요. 이런 삶은 어떻게 보면 강제된 혼자인데 이것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보시나요?
노명우
여성이 고학력일수록 미혼인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학력에 걸맞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서겠죠. 이건 대한민국의 사회조건 하에서 불가피한 일이에요.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그 속에서 개인의 가치관을 읽으려 해서는 안 돼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성차별에 기인한 불평등한 선택의 자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겠죠.
하승연
그렇군요. 그런데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예전보다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러한 변화가 현재 우리 사회가 혼자 사는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노명우
가족 형태가 변하는 속도는 굉장히 급격해요. 예를 들어 100년 전 대한민국에서는 남녀 모두 초혼 나이가 20살도 채 안 됐어요. 그리고 핵가족이 대한민국의 지배적인 가족 형태로 떠오른 일도 겨우 80년대부터죠. 1인 가구가 2030년에는 가족 형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할 정도로 가족 형태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빨라요. 반면에 가족이라는 이념은 변화 속도가 느리죠. 가족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복작복작하는 이미지를 떠올려요. 하지만 실제로 이런 가족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우리가 가족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 달리 실제 가족은 상당히 많이 변해 있지요. 관념상으로 우리 사회는 이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 이혼가정은 매우 많거든요. 따라서 관념이 실제를 따라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봐요.
황명관
제 주변 대학생 친구 중에도 이혼가정의 자녀가 많은데, 아직 사회는 이혼을 나쁘게만 말하니 자기 가정사를 웬만하면 드러내지 않더라고요. 선생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승연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을 약간 틀어서, SNS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SNS는 혼자 사는 사람이 타인과 소통하는 일을 도와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을 더 고독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혼자 있기가 싫어 SNS를 통해서나마 자신의 소식을 알리고 타인의 삶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지만, 행복해 보이는 타인과 불행한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데 지쳐 SNS를 탈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명우
SNS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화할 수 있어요. 즉, 이 질문은 “SNS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로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관계의 구체성이라는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SNS는 관계의 추상성에 놓여 있지요. 단순히 혼자 있기 싫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누군가와 만날 이유가 분명한 것은 달라요. 전자의 경우는 SNS를 많이 할수록, 사람과의 접촉 빈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구체성이에요.
하승연
그렇군요. 그렇다면 SNS를 통해 관계의 구체성을 획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노명우
그럼요. SNS의 장점은 나와 목표가 같은 사람과 관계의 구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통로로 SNS를 활용한다면 사회 내의 다양한 관계를 구체화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드물고, 심지어 SNS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도 발생해요. 이것이 바로 관계의 추상성에서 출발해 SNS를 썼을 때 나타나는 폐해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우리에게 SNS가 왜 필요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해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유행에 뒤처지기 싫어서 타의에 의해 하는 SNS는 탈퇴하는 게 나아요.
허주현
맞아요. 사실 저도 친구들이 다 하니까 뒤처지기 싫어서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기분이라 얼마 전에 탈퇴했거든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집단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린 시선을 유지하는 홀로 서는 사람을 ‘단독인’이라고 부릅니다. 단독인이 되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이는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지만, 개인이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사회조건, 즉 최소한의 기본 소득 보장이기도 합니다.
하승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대학생에게 혼자 사는 삶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자기’가 없는 사람은 무리를 떠날 수 없다고 하셨는데, 과연 대학생이 ‘자기’를 형성하기에 충분히 성숙한 존재라고 보시나요?
노명우
저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 시절은 자기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라고 봐요. 대학 입학 전까지 한국 사회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어요. 또한, 대학 졸업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직업 활동을 해야 하죠. 직업을 갖지 않아도 괜찮은 마지막 단계가 대학생이에요.
하승연
공감합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수능과 내신 시험에 집중하느라 저 자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시간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입학해 이런 기회가 주어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당장 지금부터라도 ‘자기’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어요.
이번에는 저희의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입니다. 많은 대학생이 기숙사에서 살거나 자취를 함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나름 ‘독립한 1인 가구’로 존재하는데, 이런 대학생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은 결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와 겹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문제는 아니에요. 많은 대학생이 혼자 살지만, 스스로 혼자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취를 한다는 모호한 개념으로 덮어버리죠. 자취라는 단어 안에는 매우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대충 산다는 뜻도 있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도 포함해요. 특히 대학생의 자취는 부모에게서 독립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방에서 서울로 진학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본인도 독립된 개체로서 독립된 생활을 한다기보다는 진학한 학교가 서울에 있으니까 자취를 한다고 생각하죠.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거죠.
허주현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자취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노명우
자취가 독립된 삶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독립된 삶을 조잡하게 이야기하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취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의식주를 자기 힘으로 해나가는 일이죠. 그런 맥락에서 자취는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지만, 편안하지만은 않아요. 부모에 대한 의존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모로부터의 간섭만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자취를 편안하게 느끼죠. 자취하는 학생이 자신의 삶을 단순히 자취라고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취는 독립적인 삶을 사는 연습일 수도 있고, 고유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좋은 기회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을 자취라는 단어로 표현해 뭉개버리는 순간 인생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최대치를 얻지 못하고 놓칠 수도 있어요.
노기완
그렇군요. 선생님이 대학생일 때 자취는 어땠나요?
노명우
제가 학교 다닐 때 자취하는 친구의 자취방은 아무나 술 먹고 가서 잘 수 있는 곳이었죠. (웃음) 이것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산다는 가장 낮은 수준에만 초점을 맞추는 거죠. 이렇게 자취를 이해한 상태에서 자취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자취생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해요. 결국, 자취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하승연
저도 자취를 단순히 부모님의 시선에서 벗어난 삶의 형태라고만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저는 제대로 된 자취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질문인데요, 요즘에는 혼자이기를 두려워하는 대학생이 많습니다. 혼자 밥을 먹지 못하거나 혼자 강의를 듣는, 소위 ‘독강’을 피하는 경우가 그 예인데요. 이런 대학생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노명우
물론 혼자 무언가를 하기는 굉장히 두렵죠. 잘 되면 그 성과를 다 갖지만 실패했을 경우 그 책임도 자기가 다 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위험이 큰 거죠. 수강신청을 할 때 자신이 관심 있는 강의를 신청하지 않고 우선 친구에게 무엇을 들을 건지 물어보는 이유도 위험에 대한 부담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위험은 인간에게 불가피한 그림자와 같아요. 위험을 피하려고 해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그런데 이걸 피하려고만 하니 놓치는 게 많아요. 임기응변식으로 위험을 피하기만 하면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부딪혔을 때 붕괴하는 일이 발생하죠.
허주현
혼자 할 수 있는데도 남과 같이하려고만 하면 발전이 없겠네요.
노명우
그렇죠. 사람이 하는 일은 두 종류가 있는데,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과 반드시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있죠. 이걸 명확하게 구별해야 해요. 대학생의 조별 과제는 같이 하는 일이지만, 답안지를 쓰거나 사색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혼자 해야 해요. 갑작스럽게 위험이 자신을 덮쳤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내성은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이 쌓여서 생기는 거죠. 이걸 피하려고만 하면 나중에 엄청난 삶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어요.
하승연
그렇군요. 저도 독강이 싫어서 수강신청 할 시기만 되면 별로 안 친한 친구라도 연락해 어떤 수업을 들을 건지 물어봤었는데 앞으로는 자립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그런데 위의 질문과는 반대로 대학이라는 일종의 작은 사회에 들어오면서, 고등학교 때까지와는 달리 오히려 냉소적으로 피상적인 인간관계만을 추구하는 대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대학생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노명우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항상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러한 관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습관에 따라 맺는 관계예요. 동창 관계나 오래된 친구가 그런 경우죠. 습관에 따라 사람을 만날 경우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사리분별이나 정확한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감정적 관계라는 점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때로는 매우 위험하기도 해요. 그 관계 안에서는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만나는 관계에서는 뒷담화 같은 일이 발생해요.
한편 만남에 구체적 이유와 목적이 있는 관계도 있어요. 사회적 관계가 바로 거기에 해당하죠. 예를 들어 내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고 이를 해결하고 싶은데, 이것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와 같이 생각하는 누군가와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어야만 하거든요. 이건 같은 이해관계에 따른 사회적 관계예요. 저는 성인에게는 이런 형태의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기완
그렇다면 대학에서의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 속하나요?
노명우
대학에서의 관계는 애매해요. 한편으로는 중고등학교 때와 같이 습관처럼 맺는 관계의 흔적도 있죠. 그런데 대학생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기에 성숙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틀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게 문제에요. 성숙한 관계를 맺으려면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삶을 개선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등이 있겠죠. 예를 들어,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게 성숙한 사회적 관계가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죠. 그런 출발점이 없으면 대학에서 성숙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가 없어요.
노기완
그런데 막상 대학생이 되어도 자기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학점이나 취업에만 몰두해 진짜 인생에서 중요한 관계를 맺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노명우
맞아요. 성숙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 즉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생이 많죠. 같은 과나 학번 모임 등은 습관적인 거예요. 사실 우리는 성인이기에, 같은 과거나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친해질 필요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관계를 촌스럽다고 느끼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시니컬 해지기도 하죠.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성숙한 사회적 관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찾아봐야죠. 그러지 않으면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고 냉소적인 상태에서 멈춰버릴 수 있어요. 냉소적이게 반응하는 사람은 자신이 일종의 임계치에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냉소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성숙한 관계로 넘어갈지, 아니면 모호한 관계에 그칠지 생각해봐야겠죠.
노기완
그렇군요. 우선은 제가 진정으로 끌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겠어요. 그래야만 성숙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희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책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혼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알게 된 듯합니다.
노명우
그렇다면 저로서는 정말 다행이지요. 저는 대학에서 강의하지만, 이렇게 다른 대학교 학생과, 그것도 제가 쓴 책 내용을 바탕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니 즐거웠어요.
하승연
저희 조원 모두 혼자인 삶에 막연한 환상만 가졌었는데, 진정으로 멋있게 혼자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일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명우
이번 인터뷰가 여러분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 열심히, 또 즐겁게 대학생활 하면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일동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세상물정의 사회학』 등 다양한 저서와 활발한 강연활동으로 유명하신 노명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워낙에 뛰어난 말솜씨를 가지신 분인지라 인터뷰는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혼자 산다는 것은 단순히 1인 가구로 생활한다는 뜻은 아니며, 중요한 점은 자기 인생을 혼자 책임질 준비를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