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09년 환경부는 유해동물 지정 목록에 비둘기를 올렸다. 아무리 유해동물에 지정되었다 한들, 과연 비둘기가 ‘그들만의 잘못으로’ 그 오명을 얻게 된 것일까?
지금까지의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비둘기가 일정수준의 해를 끼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비둘기의 날개 사이와 배설기로부터 나오는 병원체는 각종 전염병을 일으킨다.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 전염 가능한 것으로 의심되는 병원체도 상당수 있다. 최근 2013년 모스크바에서는 ‘병든 비둘기 전염병Zombie pigeon epidemic'이라 명명된 전염병이 유행할 정도였다.
여타 다른 종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배설물도 문제로 언급된다. 기본적으로 새의 배설물은 요산C5H4N4O3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산’은 금속과 석회의 부식을 일으켜 건축물과 동상에 손상을 입히고, 차체의 페인트를 벗겨지게 한다. 도심 속에 존재하는 새들 중에 비둘기가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들은 부식범의 탈을 벗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처음부터 해를 입히는 존재로 부각되어 온 것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는 인간과 비둘기가 도시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작된다. 우리는 쉽게 비둘기 수가 많이 늘었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비둘기 개체 수의 증가를 나타내는 정확한 통계자료는 아직 없다. 사실상 숫자는 변함없는 상태에서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살 곳을 잃은 비둘기들이 도시로 떠밀려온 것뿐이다. 즉, 우리는 도시 일부 지역에서 얼핏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수치만 보고 전체 개체 수가 증가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비둘기가 비위생적인 상태가 된 것도 사실 우리 인간의 탓이다. 본래 비둘기를 포함한 새들은 하루 3-4차례 씻을 정도로 청결하다. 그런데 도시가 확장되면서 자연을 파괴하여 깨끗한 물과 비둘기들의 보금자리인 숲을 앗아갔다. 그 결과 비둘기는 도시의 오염된 환경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병균을 옮기는 골칫덩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던 그들을 우리가 더럽혀버린 것이다.
지금 우리는 멀쩡하던 그들을 오염시켜 놓고 병균 덩어리라며 욕하고 있다. 게다가 마구잡이로 모이를 던져 키워놓고는 너무 많으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다. 비둘기 문제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되었기에 가벼운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더군다나 비둘기의 증가, 지역별 분포 등 실태를 철저히 조사한 자료가 아직도 전무한 실정이다. 우선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한 후에 정확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그렇게 만든 우리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을 먼저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