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니 응급실이다. 팔에 따끔하고 멍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려 보았다. 차가운 바늘이 꽂혀있고 그를 통해 수액이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좀 괜찮다. 그러나 별로 기쁘지 않다. 다음 달에도, 또 그 다음 달에도,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매달 겪어야 할 고통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집에서 계속 누워 있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학점을 위해서 수업에 가야 했기 때문에 진통제를 권장 복용량의 2~3배는 먹었다. 그러고 쉬지 못한 채 만원 버스를 타고, 수업을 듣고 강의실마다 뛰어다녔다. 수업에 집중하기는커녕 아픔을 필사적으로 참느라 진이 다 빠졌다. 결국 실신해서 응급실에 갔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가임기 여성의 절반은 생리통을 호소한다. 30~40%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며 5~10%는 그 고통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배은주 교수, 「생리통과 생리통약, 모르는 게 병이다」, 2013년 8월 덕성여대신문 즉, 여자 10명 중 3~4명은 매달 하루에서 이틀씩은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 건강 상태이지만 생리는 대체로 결석 사유가 안 되기 때문에 등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구의 낮지 않은 비율이 매달 겪는 고통인데 왜 생리는 공결 사유가 못 되는 것일까. 대학의 입장에선 아프지 않은 여학생들이 수업을 빠지기 위해 제도를 남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실시했다가 남용으로 인해 폐지한 대학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생리 공결제를 실시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생리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어났을 때부터 지닌 신체적 차이로 인한 것이다. 그 누구도 신체적 차이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설치하고 시각 장애나 지체 장애를 지닌 학생들에게는 수능 시간을 연장해주는 등의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다. 생리통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 출석을 강요하는 것은 심지어 여성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일이다. 생리 중 장시간 앉아있으면 혈액 배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자궁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결 제도를 남용하는 몇몇 학생들 때문에 정말 아픈 학생들이 학점에 불이익을 받거나 건강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생리 공결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시하되 남용을 최소한으로 할 방안을 찾는 것이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진단서를 요구하는 대학들도 있지만 매달 진단서를 받는 일은 번거롭고 경제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픈 학생들을 배려하면서도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적합한 해결책의 예로 결석한 수업의 내용에 관한 대체 과제를 부여하는 방법이 있다. 대체 과제를 부여하면 학생들이 공결제를 남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건강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과제를 더 많이 받을 바에 수업에 오는 것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체 과제를 통해 결석한 학생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합리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관심을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지,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