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원래 구상은 모어와 에라스무스의 우정어린 지적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람은 1499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때 에라스무스는 33세, 모어는 21세였다. …
에라스무스는 이탈리아에 공부하러 갔다가 당시 그곳에서 유행하던 학문을 접하고 극도로 분개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휴머니즘은 에라스무스가 생각하는 기독교 휴머니즘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이 책을 쓰는 데는 모어의 권유도 한몫을 했으며 실제로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모어에게 헌정하였다. 우신愚神을 찬미한다는 것은 실제 의미가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로서 이런 형식을 통해 세태를 비판한다는 의도이다. 우신 혹은 광우신狂愚神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는 이 말은 그리스어로 ‘모리아Moria’이다. 마침 이 말이 모어More(라틴어 이름으로는 Morus)를 연상시키므로, 이 책을 모어에게 바친다는 말 자체가 여러 의미에서 당대 최고의 두 지식인 사이에 벌어진 수준 높은 지적 유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정은 『우신예찬』의 서론에서 에라스무스 자신이 밝히고 있다. …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에 화답하여 모어가 『지혜의 여신 찬미』 같은 작품을 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도대체 지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은 서로 묻고는 그들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이렇게 답하였다. 누스쿠암Nusquam(아무데에도 없다).
에라스무스의 저작에 대한 대응 저작을 위해 모어는 수년간 자료를 모았고 이를 “지혜에 대한 논설”이라는 제목으로 편집하였다. 그리고 1515년에 외교 임무를 맡아 안트베르펜에 갔을 때 이 원고를 가지고 가서, 당시 유행하던 방식대로 먼 이국땅을 여행하고 돌아온 여행자와 만나 이야기하는 픽션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텍스트에 모어는 라틴어 식으로 “누스쿠아마Nusquama(아무데에도 없는 곳)”라는 제목을 붙였고, 에라스무스와 모어는 서신교환을 하면서 이 저작을 “우리의 누스쿠아마”라고 불렀다. 모어는 영국으로 돌아온 다음 라틴어 식 이름인 누스쿠아마를 그리스어 식 이름인 유토피아Utopia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전 원고를 2부로 하고 새로 1부를 써서 앞에 붙였다. 이렇게 전체 모습이 완성된 『우신예찬』는 1516년에 루뱅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마지막으로 1518년에 바젤에서 신판을 출판할 때 모어는 에우토피아Eutopia라는 말이 들어간 풍자시를 덧붙였다. 그리스어의 어간語幹 eu-는 ‘좋은’이라는 뜻이므로 에우토피아는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제 ‘아무데에도 없는 곳’이라는 유토피아는 더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서 ‘이상적으로 좋은 곳’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말의 의미의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완수되었다. …
수도인 아마우로툼은 그리스어 amaurona에서 나왔는데 이는 일식日蝕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도시는 ‘검은 도시’로서, 한편으로 안개가 자주 끼는 런던을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환상의 도시를 나타낸다. 다른 지명들 가운데에는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라틴어 접두사 a-를 덧붙여서 만든 것들이 많다. 템스 강을 연상시키는 아니드루스 강은 ‘물 없는 강’이고, 유토피아의 이웃 국가인 아코리아는 ‘땅 없는 나라’이다. 많은 고유명사들은 풍자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풀릴레리트는 ‘많은 난센스’ 즉 ‘수다스러운 사람들’, 네펠로게크는 ‘구름에서 태어난 나라’, 시포그란투스는 정확하진 않으나 ‘노망난 노인’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중요한 이름인 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는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이 원래의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