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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알파벳의 시대로 되돌아왔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이미지의 문명으로 진입했다고 믿고 있었죠. 그런데 컴퓨터로 인해 우리는 다시 구텐베르크의 우주로 들어왔고, 이제 모든 사람은 글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읽기 위해서는 매체가 있어야 해요. 물론 컴퓨터도 이 매체가 될 수 있죠.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소설을 읽노라면 두 눈이 테니스공처럼 부풀어 오를 겁니다. 우리 집에는 이러한 모니터를 장시간 사용할 때 눈을 보호해 주는 안경까지 있지요. 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욕조 안에서 읽을 수도 없고, 침대에 누워 읽을 수도 없지요. 이런 점들을 감안해본다면 책은 컴퓨터보다는 훨씬 더 유연한 도구입니다.
다음의 둘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책이 독서의 주요 매체로 남게 되든지, 아니면 책과 비슷한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겠죠. 다시 말해서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책이 항상 지녀온 특성을 지닌 무언가가 존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난 5백 년 동안 책이라는 물건의 형태에는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기능과 구성 체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이 말이에요.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는 발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은 코르크 따개를 개선해보려 시도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어요. 또 그렇게 나온 대부분의 물건은 제대로 기능하지도 않았고요. 예를 들어 필립 스탁은 레몬 압착기를 혁신해 보려고 시도했었죠. 하지만 그가 만든 기계는 지나치게 미학적 순수성에 집착한 나머지 레몬 씨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어요. 책은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고, 같은 용도의 물건으로서 책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 내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책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변할 수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책장이 더 이상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책은 지금의 것으로 남아 있게 될 겁니다.
─ 움베르토 에코·장 클로드 카리에르, 『책의 우주』,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2011, 8~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