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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소? 왜 책들이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숨구멍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오. 그런데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저 달덩이처럼 둥글고 반반하기만 한 밀랍 얼굴을 바라는 거야. 숨구멍도 없고, 잔털도 없고, 표정도 없지. 꽃들이 빗물과 토양의 자양분을 흡수해서 살지 않고 다른 꽃에 기생해서만 살려고 하는 세상,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이오. 우리는 꽃에 물을 주면 그것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지만, 현실의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지.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난 아들—옮긴이의 전설을 아시는지? 거인 씨름꾼인 안타이오스는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한 절대로 싸움에 지는 법이 없었다고 하는 얘기를 모르시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를 번쩍 들어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도록 한 뒤 손쉽게 제압했다고 하오. 오늘 이 도시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 고대의 전설에서 뭔가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완전히 미쳐 버릴 것이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박상준 옮김, 황금가지2019, 153~15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