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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언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혼란과 어긋남과 손실은 언어가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언어 자체가 혼란이다. 사물과 이름 사이에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인 결속도 없다.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겹쳐 있고, 의미는 텍스트 바깥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말은 언제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언어 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신했다고 비난을 받는 사람은 번역가뿐이다.
번역이 배신인 까닭은, 혼란스러운 언어를, 부유하는 기의를 일시적으로나마 고정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번역은 끝없이 변화하는 언어를 한순간이라도 고정하려고 애쓰는 덧없지만 불가피한 시도다.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들은—대부분—저버리는 일이다. 누구나 알듯이 어떤 번역도 원문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추듯 재현하지 못한다. 역설적이지만, 나보코프가 쌓아 올린 무한한 주석의 탑은 번역이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비다나보코프가 열거한 것만 들자면 우아함, 좋은 소리, 명료함, 취향, 현대적 용례, 문법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주석의 탑이 뻗으며 여백도 손실되었다. 상상의 여지도, 모호함의 가능성도.
─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