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겨울의 끝자락입니다. 그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다는 당신의 마음이 전염되기라도 한 듯,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마침내 다른 곳으로 떠났나요?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중,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서울에 쉬러 온 언니와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곳이 한참 겨울이라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이 세상 모든 소리가 다 들리는 언니의 병은 더 심해져서 장기 요양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언니는 가보고 싶은 곳이 딱 하나 있다며 먼 산을 바라보았어요. 그곳이 중국의 ‘무이산’이라 하더군요. 언젠가 사진 속에서 본 적 있는 무이산의 안개구름들이 눈앞에 그려졌어요. 언니와 나는 비행기를 타고 중국 복건성 샤먼으로 날아갔어요. 비행기를 타는 동안 내내 귀마개를 꽂고 있는 언니의 얼굴은 마르다 못해 뼈만 남아 앙상했어요.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하자 언니의 얼굴은 공포에 휩싸였지만, 나는 언니의 손을 꼭 잡고 무사히 비행기에서 내려 유람선을 타고 중국 속의 유럽이라는 ‘고량서’ 섬에 도착했어요. 유럽풍의 붉은 가옥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는 작은 섬에는 피아노 박물관이라는 독특한 박물관이 있었어요.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1900년대 초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그 섬에는 만 명의 외국인과 600대의 피아노가 있었다 하더군요. 대만 부호인 ‘허우위’라는 사람의 그림 같은 집에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피아노들이 멋지게 진열되어 있었어요. 삥 둘러 바다를 끼고 호수처럼 정원을 만들어놓은 그곳은 꿈속 같았어요. 각양각색의 피아노들이 그리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 고요한 풍경을 언젠가 꿈속에서 본 것만 같았답니다. 언니는 귀마개를 벗고 그 고요한 피아노들의 정경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해가 지자 온통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피아노의 침묵 속에서 언니와 나는 그저 고요히 그곳에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답니다. 마치 사람처럼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식물 같기도 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조각품 같기도 한 피아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언니가 놀란 듯 신음을 토했어요. “갑자기 소리가 안 들린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그렇게 소음에 시달리던 언니의 소리들을 그 피아노들이 다 흡수해버린 걸까? 나는 조용히 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피아노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어요.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때 같으면 백배는 크게 증폭될 그 삐걱거리는 소리가 언니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듯했어요. 언니는 그 섬에서 살고 싶다 말했어요. 모든 소음이 증폭되어 들리는 것과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까? 언니는 후자를 택하겠다 하더군요. 이국적인 분위기의 고량서 섬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우리가 자리를 잡은 호텔의 식당 구석 자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했어요. 문득 달각대는 나이프와 포크 소리가 피아노 소리처럼 들려왔어요, 나이프 포크 스푼의 달가닥거리는 소리, 커피 따르는 소리들이 내게는 ‘엘리제를 위하여’ ‘G선상의 아리아’, 혹은 쇼팽의 즉흥곡들을 서툰 솜씨로 치는 피아노 소리로 들려왔지만, 언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어요. 병이 나은 걸까요? 물 좋은 온천에서 고질 피부병이 낫듯이 언니의 귀에 크게 들리던 소리 병이 하필이면 왜 고량서 섬에서 사라진 걸까요?
우리는 갑자기 언니의 귀에 큰 소리로 증폭될지 모를 소리의 아슬아슬함을 두려워하며 조심조심 섬을 떠나왔어요. 셔먼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무이산에 도착했답니다. 말로만 듣던 안개 속의 무이산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소리를 잊은 언니는 조금씩 뿌려대는 여우비를 맞으며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너무 행복해했어요. 어쩌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보이는 쪽을 택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비를 맞으며 구름 위에 또 구름이, 수 없는 구름이 떠가는 신비로운 산속의 계단을 한없이 오르다 보니, 세상의 소리들은 산속으로 다 숨어들어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듯했어요. 내게는 폭포의 물소리도 피아노 소리처럼 들려왔어요. 문득 예전에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화가 할아버지가 떠올랐어요.
백 살이 넘어 돌아가신 노화백의 귀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여럿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그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다가 갑자기 뚱땅 땅땅하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곤 했어요. 소리를 지른다기보다는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혼잣말을 하는 것도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건 어릴 적에 외웠던 러시아 군대의 군가라고 하더라고요. 웅성거리는 세상의 소음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자, 그분은 그렇게라도 소리를 질러대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내게만 살짝 말씀해주셨어요. 백 살 하고도 두 해가 되던 날 즈음에 그분은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던 그의 귀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의 소리들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 것일지,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답니다. 누군가 말하듯 사람이 오래 살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역설일 확률이 크지요. 유난히 오래 사는 사람은 세상의 새로운 언어들과 소통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그렇게 고독한 자신만의 세계는 고고학 박물관처럼 적막한 곳이겠지요. 무이산의 적막 속에서 하필이면 노화백의 웅얼거림이 생각나는지 모를 일이었어요. 언니는 소리 병이 다 나은 듯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이상하게도 언니의 흥얼거림은 그 옛날 노화백이 웅얼거렸던 러시아 군가 같은 음률을 지니고 있었어요. 나의 귀가 이상해지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고요.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시내를 거닐었어요. 저녁을 먹고 밤이 와도 시내의 가게들은 거의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어요. 그 가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 차를 파는 곳이거나 찻집이더라고요. 아무것도 없고 찻집들만 즐비한 밤거리에서 사람 없는 한적한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은 이상한 꿈속 같았고, 언니와 나는 왠지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곳은 차를 즐기고 숭배하는 사람들에겐 차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라 하더라고요. 나는 그 찻집들을 스쳐 지나며 왠지 들어갈 수 없는 ‘밝은 상점들의 거리’라는 제목이 떠올랐답니다. 언젠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책 제목도 떠올랐고요.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이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그 소설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읽는 기분이었답니다. 내가 부분적으로 잃어버린 기억들이 그 찻집들 안에 숨어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요? 이상하게도 그렇게 밝은 상점들의 거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너무 멀게만 느껴졌답니다. 우리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차를 파는 거리, 문득 언니와 나는 갑자기 낯선 별에 떨어진 어린 자매 같은 쓸쓸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혼자가 아닌 건 참 따뜻한 추억이 되었고요. 아무도 들어오라거나 손짓조차 하지 않는, 아니 우리가 투명인간이라도 되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밝은 상점들의 거리에서 아무 찻집에나 들어가 차 한 잔 마셔도 좋으련만, 우리는 망설이고 기웃거리며 그저 스쳐 지나갔어요.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당신과 내가 그 밝은 상점들의 거리 어느 찻집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어찌 이 먼 길을 왔냐했더니 나를 찾아 온 지구를 돌아왔다 하더군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로 누군가 우리를 향해 물었어요. 무슨 차를 마시겠냐는 말 같았는데, 그 소리도 그 옛날 노화백이 웅얼거리던 러시아 군가처럼 들렸어요. 전쟁이 나서 피난을 내려와, 백 살이 되어 세상 떠날 때까지 그리운 고향을 가보지 못한 노화백의 절절한 음률로 누군가 무슨 차를 마시겠냐고 묻는 거였어요. 서양 얼굴을 한 당신과 동양 얼굴을 한 내가 낯선 외계에서 만나 차를 마시는 풍경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한문으로 쓰인 찻집의 이름을 물으니 영어를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주인이 ‘바그다드 카페’라고 답하더군요. 내가 깜짝 놀라는 사이, 당신은 그 옛날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에서 스쳐 지났던 젊은 얼굴 그대로 내게 카드를 하나 내미는데, 그건 청첩장이었어요.
당신의 이름과 누군가의 이름이 나란히 씌어있더군요. 그 이름이 내 이름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게 누군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내 꿈이라는 걸 알았어요. 오래도록 소식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꿈이란 참 알 수 없는 현실의 속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이곳은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또 뭐하나,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젊은 날이 아까워지네요. 누구나 힘들었던 그 좋은 봄날은 가고 또 봄은 다시 오지만, 우리들의 유일한 현실은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끝이 올 거라는 사실이지요. 당신이 지금 어디 있든, 누구와 함께이든 늘 행복하길.
― 언제나, 당신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