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⑧ 울산 독서동아리 ‘2019 태백산맥’
시작은 꼬막이었다. 꼬막을 안주로 술 한잔 마시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일 년 동안 『태백산맥』을 읽고 연말에 벌교로 기행을 갈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벌써 작년 이야기다. ‘2019 태백산맥’은 책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쉽게 쥐지 못했던 대하소설 한번 읽어보자고 모였다.
우리는 울산 책방 ‘다독다독’을 통해서 알게 된 인연들이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책을 사러 오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낭독을 하기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지역 유적지를 찾아 공부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과 대하소설에 도전한다면 일 년이 꽉 채워질 것 같았다.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함께라면 가능한 일. 책방 주위에는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태백산맥』이 주는 힘에 끌려,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 지금 아니면 평생 읽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제각기 다른 이유를 품고 2019년 1월 ‘2019 태백산맥’ 책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1월은 준비운동의 시간이었다. 조정래 작가의 인터뷰와 태백산맥 200쇄 출판 기념 저자와의 대화 영상을 보았다. 20대 초반,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폈던 1권에 소화와 정하섭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거라는 사회자의 너스레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실제로 인물들 사이의 애절함은 태백산맥을 끝까지 읽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도 긴 호흡의 대하소설은 읽기 쉽지 않았다. 『태백산맥』은 몰입도가 높아 누구나 읽을 수 있으나 지역색의 언어들, 배경지식, 일상의 흐름이 그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특히나 우리는 한동안 이 책을 읽어도 되는지 자기 검열을 했다. 공교육을 충실히 따르며 자란 우리에게 『태백산맥』은 사상과 정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변화하고 성장했다. 관련 역사자료를 같이 나누기도 하고, 줄거리와 인물들을 적어가며 읽기도 했다. 책 읽을 시간도 따로 정해두었다. 죽산댁, 외서댁, 서민영 선생, 심재모, 손승호…. 모두 우리였다. 너무도 무지했던 역사를 깨달으며 부끄러워했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역사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0월. 드디어 우리는 벌교로 떠났다. 십 년 동안 기관의 지원 없이 지역주민들만의 목소리로 『태백산맥』 속 의미를 전하고자 연극을 준비하고 문학기행을 열어 오신 분들과의 인연은 더 큰 태백산맥을 만나게 했다.
책을 읽고 싶다면 함께 읽기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위에 나와 같이할 사람들을 찾거나 책을 가까이하는 장소를 가보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내 틀을 바꿀 책을 만나는 것. 내 경계를 넓혀줄 사람들과 잠시 쉬어가며 작은 목표를 끝까지 해나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흔적을 꼭 남기시길 바란다. 메모든 블로그든 사진이든. ‘우리가 모여 책을 읽고 글을 남긴다’라고.
2020년, 우리는 다시 모였다. 책방 ‘다독다독’에 모여 이번엔 『토지』를 읽기로 약속했다. 코로나19와 맞물려 우리의 만남은 잠시 쉬고 있지만, 상황이 종식되면 우리는 다시 읽고 기록하며 흔적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