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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담을 넘은 여성 노동자들
월담
모이는 곳
인천 여성노동자회
모이는 사람들
40~60대 여성 노동자
추천 도서
① 『내 안의 가부장』 시드라 레비 스톤 지음 / 백윤영미, 이정규 옮김 / 사우 펴냄
②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③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지음 / 창비 펴냄
④ 『미투의 정치학』 정희진 엮음 / 권김현영, 투인, 한채윤 지음 / 교양인 펴냄
⑤ 『을들의 당나귀 귀』 손희정, 최지은 외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서울 지하철 1호선 백운역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인천 여성노동자회 건물이 나온다. 2020년 9월 22일, 다섯 명의 월담 회원들이 그 안에서 모임 준비를 하고 있었다.
越담 : 담을 넘다, 경계를 넘다
‘담을 넘다’, ‘경계를 넘다’는 뜻의 독서동아리 ‘월담’은 조직 내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모인 동아리다. ‘보리향’, ‘여랑’, ‘그냥’, ‘마루’, ‘이모작’ 등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며 평등한 분위기에서 모임을 진행한다. 취재단을 반갑게 맞이한 ‘월담’ 멤버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두 달 만에 만났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나 더 정다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월담’이라는 동아리 소개를 들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동아리의 첫 시작점이었다. ‘월담’의 대표 ‘여랑’은 지난해 상반기 「성 평등 강사 육성을 위한 교육」을 들었는데, 당시 여성 노동자 중 성 평등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중장년 노동자들에게 성 평등을 교육하고 관련 자료를 만들면서 책 읽는 모임까지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정기적으로 모이면서 페미니즘의 기초부터 시작해 페미니즘 책을 읽고 발제를 하는 ‘월담’이 만들어졌다.
‘월담’은 그간 성 평등에 대해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나 숨죽여 왔던 일들을 반성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담을 넘어가자는 뜻을 담아 ‘푸르나’ 회원이 지었다.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등의 이슈를 묵인하고 넘어갔던 담을 넘을 시간이라는 의미가 느껴진다.
‘월담’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진행한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고 토론한다. 모임을 통해 페미니즘을 깊이 알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 같은데,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가장 치열하게 토론했냐는 질문에 대부분 처음 읽었던 『내 안의 가부장』을 꼽았다. ‘그냥’은 “이 책을 통해 여자들끼리 흔히 하던 말인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게 되었고, 뿌리 깊게 자리한 가부장적 인식을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보리향’은 “이 책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갔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더욱 섬세하게 매체나 언어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삶 속에 있던 차별적 언어를 발견하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월담’은 현재 중장년의 성 평등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성 차별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성 차별인지,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에서 다루는 여성의 모습 중 성 차별적 요소는 무엇인지를 알려주며 시각을 넓히는 프로그램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동화책으로 접근한다든지, 속담을 성 평등 언어로 바꾸는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동화, 속담에도 성 차별적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성 차별적 요소, 속담에서 ‘암탉’이 쓰이는 방식 등 우리가 무심코 쓰고 배웠던 문장들에도 성 차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월담’은 여성 노동자들이 쓰는 자서전 프로그램도 계획 중에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노동자들의 사례를 발굴해 모임 때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온 노동자들의 자서전이 기대된다.
성 차별적 발언에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회원들
페미니즘, 성 평등을 접하면서 ‘월담’ 회원들의 일상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은 180도 다르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페미니즘은 많은 여성의 삶을 변화시켰다.
오랜 기간 노동자로 살아왔거나, 지금도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월담’ 회원들에게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 변화된 점이 있냐고 물었다.
‘이모작’은 단체 메신저에서 성 차별적이거나 여성을 희롱하는 사진을 보내는 지인에게 단호하게 “이 사진은 성 차별적 사진이니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게 되었단다. 예전에는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는데, 페미니즘을 배운 후 이런 부분들을 짚고 넘어가는 중이다.
또 광고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성적으로 평등한 미디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성 차별적 광고를 보았을 때 “어떻게 변화해야 성적으로 평등해질까”를 자주 고민한다며, 이런 점이 그동안 TV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던 과거에 비해 생각할 거리가 많아 어렵기도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얻는 것들이 크기 때문에 즐겁다고 한다.
거의 모든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변화는 ‘말을 하거나 칭찬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외모적인 칭찬이나, 어린 청년들을 향한 무의식적 칭찬이 상대에게는 기분 나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질문이 있을 때는 정중히 물어보며, 외모 평가처럼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은 지양하는 중이다.
인생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인생의 선배로서 2~30대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보리향’은 “매스컴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다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검증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검증되지 않은 기사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요즘, 청년들이 깊이 있는 팩트 체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고 와전된 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는 팁을 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 초년생, 청년들에게 정말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이번 인터뷰는 청년이자 여성인 나에게 깊은 깨달음과 배움을 주었다. 최근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든 점이나 막막한 점이 있었는데, 후배들이 보다 성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공부하고, 교육하는 ‘월담’을 보며 힘을 얻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 많은 차별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모르는 점은 배워가고 다양한 정보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가며 평등하고 발전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취재단 성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