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금시초문’
모이는 곳 _ 경기 과천시 여우책방
모이는 사람들 _ 직장인, 프리랜서, 대학생 등
추천도서
1. 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문학동네 펴냄)
2.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푸른 산이 이어지는 과천에 이르러 과천종합청사 앞 아파트가 밀집한 상가, 밥집과 피아노 학원이 즐비한 가운데 주변과 결이 다른 시화가 그려진 벽이 보인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의 사이가 더 많다.” 이문재 시인의 시 ‘사막’이 쓰인 벽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별주막이라는 주막, 카페 혹은 책방이 나온다. 이곳에 ‘금시초문’은 둥지를 틀고 있다.
“시가 사실은 어렵잖아요. 시를 어떻게 만나야 좋을지 고민하던 중 평소 알고 있는 한편만 가지고도 여러 사람을 만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독서동아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디자이너, 출판사 근로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다 이곳 별주막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홍지숙 대표가 말한다. 금시초문의 멤버들은 모두 이곳 별주막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는 카페, 막걸리가 맛있는 주막으로 혹은 낯선 인문학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방으로 이 장소를 찾아온 이들이 한둘씩 모여 지금의 ‘금시초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큰 진입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고 싶으면 오고 일이 생겨 오지 못해도 큰 상관은 없다. 시를 챙겨오지 못해도 괜찮다. 무거운 모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끼 정도는 점심에 밥 대신 시를 읽어보자는 마음가짐 하나면 충분하다.
도착하자마자 직접 내린 아이스 커피 한잔을 건넨다. 직접 만들었다는 막걸리도 따라준다. 다들 떡이나 과일, 빵을 풀어 책상 위에 올려주면 준비가 끝난다.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던 회원은 모두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인도에서 차도 챙겨왔다. 별달리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내지도 않는다. 저 하나 읽어볼게요, 누군가 손을 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한 회원이 박노해 시인의 「엉겅퀴」를 읽었다.
“피 흐르는 세상에 자기 몸을 던져 누군가를 살리고 치유하는 자는 너처럼 늘 억센 가시가 있지.”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기록하며 자기 나름대로 시를 느낀다. 규칙도 방식도 없다. 시를 읽고 나자 저마다 자기 생각을 나눈다. 어떤 이는 취재 당시 화제가 된 낙태금지법 반대 시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노동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강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찬사, 강해져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위로를 나누며 토론의 방향이 형태를 가지기 시작할 때 홍지숙 씨가 놀라워하며 말한다. 놀랍게도 오늘 준비한 시가 「엉겅퀴」와 닮은 주제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운재 시인의 「바닥」이었다. 바닥 역시 또 다른 하늘이라는 시의 주제를 두고 공격적인 주장에 혐오감을 느끼는 요즘의 세태에 대해 다른 시점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다음에 나온 시들은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김현주 씨는 장석남 시인의 「옛 노트에서」를 읽었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자작시를 쓰기도 한다는 김현주 씨의 낭독이 끝나자 사람들은 앵두가 익는 6월로 되돌아간 듯 가만히 감은 눈을 떴다. 이런 시는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눈을 감고 느끼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에 이세림 씨가 자기가 떠올린 시를 읽는다. 조경숙 시인의 「박하사탕 하나가 녹는 시간」이다. “집에서 일터까지의 걸음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 세 번쯤 반복되는 시간”으로 시작하는 아주 달콤한 시였다. ‘금시초문’의 이른바 막내인 이세림 씨가 영화 「박하사탕」을 보며 이 시를 떠올렸다고 말하자 다들 놀라워한다. 지나간 시절의 메타포가 가득한 시지만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도 한 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추억을 담은 이야기보따리도 하나씩 풀린다. 준비했다는 다음 시도 읽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호흡은 들숨일까 날숨일까 마지막 날숨을 탄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들숨을 결심할 때의 그것으로 볼 수 있을까”
모두의 반향을 일으킨 이현승 시인의 「눈물의 원료」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모임은 끝이 났다.
“처음에는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어요. 한 시간은 너무 짧기도 했고 어떤 시를 읽어야 좋을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부딪혀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함께해준 분들에게 고맙고 죄송한 부분이죠.” 홍지숙 대표가 겸손하게 말했다.
“한 사람씩 자기가 챙겨온 시 한 편을 읽어요.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꺼냅니다. 긴 이야기가 오갈 때도 있고 짧은 이야기가 오갈 때도 있습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처음 보는 시에서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시가 생각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우연스러운 순간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이 감동이 하루를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게 합니다.”
‘금시초문’에서의 하루는 시를 통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감정과 삶을 시를 통해 나누며 시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었다. 각박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루 정도는 시로 점심을 드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메뉴 대신 시를 고르고 낮잠 대신 대화를 만나보자. 매주 금요일 여우책방에서 ‘금시초문’은 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작성자: 청년취재단 홍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