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강간을 당했다. 두들겨 맞았다. 발가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했기 때문에 그녀는 원하지 않는 일을 당했다. 여자는 구급차에 옮겨지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구급대원들이 그녀를 일으키자 여자의 거기에서 돌멩이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고.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밤새 홀로 누워 있던 그녀의 몸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녀가 흐릿하게 맴도는 의식을 어떻게 간신히 붙잡았는지,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견뎠는지, 정작 누군가 도와주려 손을 내밀었을 때는 잔뜩 겁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 다들 한 번씩은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잘한 돌멩이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냈던 그 소리들에 대해서만, 오직 그 이야기만 사람들의 입에 끈질기게 오르내렸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어야지. 그래, 그랬어야지.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강조 필자)
─ 강화길, 「호수-다른 사람」『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7, 201쪽
당한 여자와 해한 남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사랑이었다고?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추행은 했으나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여자는 죽기 직전이고 남자는 변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관전한다. 구경꾼의 시선은 두 개다. 피해자 입장에 선 안타까운 시선과 호기심 가득한 관음증적 시선. 앞 시선의 목소리는 뒤 시선의, 당한 여성을 나무라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 가해자와 가혹행위는 이 목소리 뒤로 슬며시 숨어버린다.
어디서 많이 듣거나 본 것 같지 않은가?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성폭력, 성폭행, 강간을 둘러싼 모든 서사의 한 중심에 강화길의 단편 「호수-다른 사람」, 장편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이 있다.
여성혐오와, 이의 근원인 가부장성과 관련하여 여/남 간의 인식과 태도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밀쳐지거나 버려지거나 죽어가는 여자들은 호소한다. 그러지 마시라. 아프다. 귓구멍 막힌 자들은 듣지 않는다. 부인하거나 변명한다. 아픈 자들은 분노한다. 고막을 찢어발기기라도 하듯이 절규한다. 1924년의 ‘살고 싶다’「여성동우회」 창립 선언문와 2016년의 ‘우연히 살아남았다’강남역 여성살해 관련 10번 출구 포스트잇의 선언이 놀랍도록 닮아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가부장성을 보물단지처럼 아끼는 남성사회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함부로 ‘취급’하는 행위는 어제오늘이 다르지 않게 지속되어 왔다. 위계의 위층에 사는 이들은 아랫것들을 ‘장난으로’ 때리고 ‘귀엽다고’ 더듬으며 ‘사랑하기에’ 껴안거나 쑤신다. 그들은 선심 써서 공적 장소, 혹은 공적 계약관계 안에 여성을 발들이게 해 줬다. 그런데 여성이 갑자기 인형을 벗어던지고 ‘인간’으로 서고자 하면 ‘나대는’ ‘기 센’ ‘더러운’ 여자로 낙인찍고 즉시 그들이 베푼 하해와 같은 관용을 철회한다.
「호수-다른 사람」 속 민영의 남자친구는 술을 못 마시고 얌전하며 고분고분하게 따르고 보호받는 약한 존재 민영만 사랑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넘치는 행동은 배려, 사랑, 혹은 보호라는 명목 하에 즉각 제재를 가하거나 통제한다. 민영을 숨 막히게 하는 이 과도한 사랑은 곧잘 폭행으로 전환되며, 폭행이 상처와 자국을 남기면 ‘실수’였다고 얼버무린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계관계·권력관계의 성폭행, 강간의 추문, 방조하거나 침묵하는 남성 동성의 집단 무의식의 근원에는 ‘여자는 2등, 세컨드다’라는 가부장성이 내재되어 있다. 「호수-다른 사람」에서 미자네는 남편의 매를 피해 매일 호숫가에서 힘없이 빨랫방망이질을 한다. 누구도 말리거나 도와주지 않으며 오히려 꼬마 남자아이들이 미자네의 머릿수건을 벗기고 놀려댄다. 민영은 그것이 안타까워 운다. 선생님에게 일러바친다. 남자아이들은, 장난이었다고, 실수였다고 변명한다. 그리고 민영에게 하는 말, ‘야, 너도 세컨드지?’ 유전자에 각인되기라도 한 듯, 어린 남자아이조차 지니고 있는 남성 간의 일등의식이 여성비하와 혐오의 근원임을 작가는 확인시켜준다.
우선 2017년에 발표된 단편 「호수-다른 사람」을 살펴보자. 화자 ‘나’의 절친인 민영이 폭행당해 호숫가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민영은 “호수에 두고 왔어. 호수에”라는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이야기는 민영의 남자친구 이한과 내가 진실을 알기 위해 호수에 동행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 동행 자체가 나에게는 부담스럽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호수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고폭행과 목 졸림, 무엇보다 이한이라는 사람 자체를 의심한다. 남들은 이한을 여자들의 이상형, 조건을 모두 갖춘 스마트한 남자라고 말한다. 그는 키 크고 평판이 좋다. 매일 민영을 집까지 데려다줬고, 수시로 연락해서 민영을 신경 썼으며 가족의 대소사도 꼼꼼하게 챙겼다. 예의 바르고 잘생기고 유머감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의심한다. 민영의 몸에 난 멍 자국들, 상처들, “요즘 뭔가 무섭다”는 고백, 멍 자국에 대해 “모르겠어. 그냥 실수였던 것 같아”라고 한 모호한 말, 그 뒤의 호숫가에서 의식불명인 채 발견된 점. 이한의, 찰나에 변하는 서늘한 표정 변화, 힘 조절에 실패한 과도한 스킨십 등등으로 나의 신경은 팽팽히 긴장되고 공포는 증폭된다.
이한이 집착하는 것은 두 가지. ‘나 괜찮은 사람이지? 그렇지?’와 ‘내가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거 아니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집요한 추궁과 윽박지름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지닌 현대 남성들의 강박을 읽어낼 수 있다. 두 사람은 각자 매우 신경증적이고 강박적이다. 서로 간의 치밀한 탐색전이 호수로 가는 길 내내 펼쳐진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나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밝히고 싶은, 혹은 호수로 유인하여 나를 제거하고 싶은 이한 간의 숨 막히는 긴장 관계를 타고 여성 잔혹의 에피소드들이 중첩되어 묘사된다. 나의 의심과 공포는 점점 커지다 드디어 호수에서 터질만한 일이 터진다. 빠뜨림 당하고, 추궁당하고 물속에 처박히고, 그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고통스러운 순간 깨닫는다. 우리는 (그녀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야.
강화길은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아직 남은 사람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밤새 홀로 누워있던 그녀의 몸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녀가 흐릿하게 맴도는 의식을 어떻게 간신히 붙잡았는지,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견뎠는지.”
나에게는 이 장면이 중요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전언처럼 나는 아직 남은 사람. 그러나 죽어가는 민영이 호숫가에 두고 왔다는, 놀림당하고 조리돌림 당하며 목졸림 당하고 폭행당한 후 버려지는 여성 잔혹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람. 그러므로 ‘나’는 쓴다.
「호수-다른 사람」이 30대 여성의 신경증과 남성의 강박을 가운데 두고 여섬혐오에 관해 써 내려간 심리소설이라면 장편 『다른 사람』은 외연을 확장하여 이 문제가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인공 진아는 팔현에서 태어나 안진시에서 대학을 다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잘려나간 여자. 고향 팔현, 안진시, 서울과 인터넷 공간까지 포함하며 공적공간, 특히 근대적 공적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폭력과 위계폭력, 성원권, 인정투쟁, 혐오의 문제들을 다룬다.
법조계, 군대, 병원, 학교, 문화계 등등 모든 근대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도처의 ‘추악한 봉건 왕’들의 권력형 폭력과 이에 맞선 폭로전, 동참하는 미투 행진과 방어전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미리 보기 한 듯 『다른 사람』은 한 여성의 생애주기 동안 거주했던 주요 공간에서 여성혐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지난하고 피로한 일들을 묘사해 나간다.
문제적 인물 진아는 30대. 여성혐오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인물이다. 근대적 ‘개인’으로, 공동체의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교육받고 자랐지만 가부장성을 상징 질서로 떠받들고 있는 근대적 공간은 언제나 진아를 ‘타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 모순이 오늘날 젊은 여성 세대들이 겪으며 거부하고 항변하는 원인으로 자리매김 된다. 미성년시절 진아가 겪어야 했던 것은 ‘성원권’을 둘러싼 위계폭력이었다. 마을 공동체는 문란한 여자 춘자를 배제하고, 아이들은 춘자 딸 수진을 자신들의 딸들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 파출소장 딸 송보영이 권력을 휘둘러 아이들을 조정하며 춘자 딸과 노는 아이들을 왕따시킨다. ‘더러운’ 여자의 ‘더러운’ 딸과 노는 ‘더러운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수진을 감싸고돌며 친하게 지냈던 진아는 수진을 멀리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안진의 대학사회 역시 대표적 근대 공간. 여기에 여강사, 남자 선배, 동기생 남자 그리고 여학생들이 있다. 남학생들은 선후배 간에 ‘진공청소기’ 하유리를 소유하고 유린하고 농락하다 내다버리는 방법을 공유한다. 유리는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어릴 적 진아로부터 크나큰 분리경험의 피해를 입었던 수진은 다시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려 한다. 수진은 학내 최고 권위자 선배의 애인이 되어 피해의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진아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어릴 적 피해사실을 역이용하여 수진의 대학 공간 성원권을 박탈하는 가해자가 된다. 두 사람은 가해/피해의 관계를 넘나들며 서로 얽혀 청춘기를 소모한다. 반면 남학생 규현과 동희는, 가부장사회의 적자가 되기 위해 권력의 충견이 되거나 위계폭력의 암묵적 동조자가 되며, 유리 성폭행의 공모자, 공동소유자로 동성공동체를 유지해나간다.
직장인 진아가 겪는 일은 직장 내 성폭력이자 데이트폭력이다. 직장상사 남자친구로부터 심각한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다 법에 호소하지만 벌금 300만 원의 가벼운 처분을 받은 가해남성은 버젓이 직장에 다니며, 진아는 폭언과 협박의 2차 피해에 시달린다. 견디다 못해 인터넷 공간을 이용했으나 오히려 ‘된장녀’ ‘꽃뱀’으로 낙인찍힌다. 직장 대표는 회사이미지 추락과 회사수입을 핑계 대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고, 진아는 직장을 떠난다. 가해는 있으나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는 일생동안 공동체 성원권을 박탈당하게 되는, 직장 내 성폭력에 관한 전형적인 성폭력 서사가 전개된다.
진아를 통해 피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소속을, 신뢰를, 명예를, 사랑을 잃어가고 분노와 자기혐오의 질책에 짓눌려 몸과 마음이 서서히 죽어가는지 작가는 여실히 묘사한다. 이러한 진아가 다시 일어서게 되는 계기는, 피해여성이 항상 그렇듯이 가해자의 후안무치에 이 악물고 덤빌 수밖에 없는 ‘분노’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결코 ‘직접’ 사과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자아’의 존재에 대한 존중, 개인의 존재에 대한 직접사과와 반성인데 가해자는 항상 ‘공적’으로 변명하고,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회개이거나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며 명예훼손의 죄를 묻는 ‘법적’ 절차로 뒤집어씌우기를 진행한다. ‘법적’ ‘교회적’ ‘공적’ 매체를 악용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주고 ‘조리돌림’을 하여 한 인간의 인격을 짓밟는 모독. 그것이 피해자로 하여금 분노의 거친 힘을 발휘하게 한다. 진아의 경우, 인터넷 악플 가운데 ‘김진아는 거짓말쟁이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이라는 10년 전 가해자의 악플을 보고 분노심이 팽배하여 안진으로 내려간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죽어서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 유리의 행적을 복기하면서 진아는 서서히 스스로 가해자이기도 공모자이기도 했었던 일들을 깨달아나간다.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피해여성들의 공동가해자 동희수진을 겁탈했고 유리에게 상습폭행을 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진아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는 대학강사가 되어 똑똑한 여학생 이영을 성추행했다. 도돌이표처럼, 이영은 폭행 사실을 학교에 호소하고 학교는 동희를 감싸고 이영을 질책하고 이에 불복한 이영은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는 피해자를 피해주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30대 진아, 죽은 이영, 유리, 수진 모두 숨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공동대응 한다는 것.
괄호들.
(폭행) (협박) (옷 벗김) (짓누름) (흥분) (발기) (쑤셔 넣음) ( ) ( ) ( ) ( ) ( ) ( ) (중략) 그 여자가 당한 (괄호)들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 핍진하고 세밀한 (괄호)들! 증오를 품은 여자가 결국 남자에게 복수를 했기 때문에, 통쾌하게 갚아줬기 때문에 여자가 당한 (괄호)는 잊혔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 있는 걸까. 그 끔찍한 (괄호)의 순간들을 과연 피해자는 잊을 수 있는 건가? 복수했다고 해서, 통쾌하게 갚아줬다고 해서 (괄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 강화길,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 217쪽
#me too with you의 목소리는 일시적으로 터져 나온 유행성 현상이 아니다. 제왕적 권력관계, 가부장적 위계 관계의 망에서 언제나 세컨드였던 타자들이 주체의 자리에 설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은 아프게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