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L, 랭어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S. G. F. 브랜든 <위대한 신앙해석자 바울>
브랜든은 이 글에서,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예수에게서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발견하고 이러한 근거 위에서 종교를 구축한 반면, 바울은 그 당시 로마 세계에서 유포된 다양한 종교 사상들을 흡수하여 전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예수의 역할을 설파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발전과정은 예수의 역사성, 예수의 추종자들에 의한 신흥 종교의 점진적 형성 등 많은 난제들을 역사학자들에게 던져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예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바울의 가르침에도 근거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의 12사도에 속했던 인물이 아니라, 헬레니즘화된 유대인이자 개종자였다. 브랜든은 이 글에서,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예수에게서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발견하고 이러한 근거 위에서 종교를 구축한 반면, 바울은 그 당시 로마 세계에서 유포된 다양한 종교 사상들을 흡수하여 전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예수의 역할을 설파했다고 주장한다. 그후 이어진 양자 간의 갈등의 와중에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바울에게 그들의 관점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기 70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예루살렘 교회의 소멸에 따라, 바울이 생각한 광범하고도 세계주의적인 종교가 득세하게 되었다. 바울이 설파한 세계 종교는 그후 유럽 역사의 행로를 결정지었다. 브랜든은 맨체스터 대학교의 비교종교학 교수이며, 《예수와 열심당 Jesus and the Zelots》《나사렛 예수의 재판 The Trial of Jesus of Nazareth》등의 저서를 펴냈다.
의문 속의 바울 서한
신약성서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집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보노라면, 초대 교회의 가장 훌륭한 사도는 바울이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신약성서 전체 가운데 열세 권이 ‘바울 서한’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데 비해, 그 밖의 다른 어떤 사도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서한을 두 권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울의 글은 신약성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기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사도행전>의 대부분은 바울의 행적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지도자이자 교사로서 바울이 가졌던 우월성을 염두에 두고 바울이 쓴 글들을 읽다보면, 기이하게도 모순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종종 자신을 따르는 개종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몇몇 적대자들에 대해 심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때로 그들을 향해 매우 격렬한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이상스럽게도 우회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근본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울의 서한들은 어찌하여 그토록 격렬한 논쟁으로 가득 차 있는가? 신약성서에서 그의 서한이 차지하는 분량이나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기록은 신앙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해석자로서 그의 탁월성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가 누린 절대적인 지위는 후대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가?
바울 서한과 <사도행전>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교의 정착과정에 대한 복잡한 연구에 돌입해야 한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최근 기존의 전통적 관점에 대해 다양한 재해석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 최대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결정지은 강력한 두 인물의 극적 대립과 충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바울과 그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본 자료의 성격부터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가 직접 쓴 서한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 그가 로마 제국 여기저기에 세운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특별한 상황을 다룬 서한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그가 언급한 상황을 거의 부연 설명하지 않은 채 지나쳐버렸다. 그런 상황은 당시 그의 서한을 읽던 독자들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우연한 언급과 암시적 표현들을 통해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재구성해내야 한다. 더욱이 유념해야 할 것은, 바울 서한들이 본질적으로 양측의 근본적인 대립·갈등에 대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설명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바울의 적대자들의 주장을 담은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울러 그러한 사안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주요 정보는 바울 자신의 진술로부터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
<사도행전>은 두 번째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도행전>은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이 있은 지 40년 가량이 지난 후에 작성되었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사건의 시점과 이를 기록한 시기의 중간쯤인 서기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교회의 내부 상황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더욱이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확고한 기반을 갖추기까지 그 성공적인 전파 과정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당시의 대립과 갈등 국면은 가볍게 스쳐지나 가면서, 그리고 당시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을 상호 우호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지난 일들을 실제보다 이상화시켜 서술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증거들을 보다 주의 깊게 해석해보면, 우리는 이 문헌에서 바울에 관한 두 가지 귀중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킬리키아의 타르소스 시 태생의 헬레니즘화된 유대인이라는 것, 둘째로, 로마 시민권의 특전을 향유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바울 서한과 <사도행전>의 두 자료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 한 가지 점에서 명료한 일치점을 보여준다. 바울은 본래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가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처형되고 난 후 교회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두 자료가 일치를 보이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새로운 신앙으로 개종한 것은 예루살렘에 머물던 제자들의 초기 공동체를 통해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이 시기에 그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도들로부터 독립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가 새로운 신앙의 발전 과정에서 떠맡게 되었던 역할을 해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바울은 자신이 개종하기까지의 과정을 서한을 통해 언급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개종시킨 갈라디아 사람들 - 그들은 바울의 적대자들 쪽으로 끌려들어갈 우려가 있었다 - 을 상대로 편지를 썼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이 더 큰 권위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다음 글은 <갈라디아서>(1:11~20)에서 인용한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했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했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종족 가운데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모든 사람보다 유대교에서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주신 분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3년 뒤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동생 야고보밖에는, 사도 가운데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바울의 처지에 관련된 세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신이 개종시킨 사람들 앞에서, 적대자들의 가르침에 맞서 자신의 가르침을 옹호하기 위해 바울은 이렇게 주장한다. 즉 자신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특히 예루살렘의 최초의 사도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 가르침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에 의해 직접 그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가르침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능하도록 특별히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넌지시 자신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의 최초의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전승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 가르침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측면을 옹호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약 20년 동안 그리스도 교회에서 벌어졌던 놀라운 상황의 내막을 대략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독립적 위치에 있으며, 그의 가르침이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것임을 설명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는 명백히 특정 적대자들에 맞서 자신의 가르침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태도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적대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바울을 적대시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신앙에 대한 두 개의 대립적 해석
두 편의 글에서 바울은 이들 적대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매우 신랄한 어투로 표현하고 있다. <갈라디아서>(1:6~9)에서 그는 신도들을 향해 이렇게 설교한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했지만, 이제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예사롭지 않은 표현은 <고린도후서>(11:3~6)에 나와 있는 다른 구절과 유사하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쓸 무렵에 마주쳤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 필경 그리스 고린도(코린토스) 시의 개종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뱀이 그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인 것과 같이,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바치는 진실함과 순결함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을 잘도 용납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서 받지 않은 다른 영靈을 잘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서 받지 않은 다른 복음을 잘도 받아들입니다. 나는 저 가장 위대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일에서 여러 가지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이 두 인용문에 나타난 바울의 어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또한 놀랄 만한 것이다. 바울은 사실상 교회 내에 신앙에 대한 두 개의 대립적인 해석이 존재한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에 대한 언급은, 바울의 적대자들이 예수의 인격과 역할에 대해 바울과는 다르게 가르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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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가르친 새로운 신앙
만일 그것이 ‘예루살렘판 복음’이었다면, 바울이 가르친 새로운 신앙이란 무엇이었을까? 바울은 개종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신앙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가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불가사의한 그의 회심 과정의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살아 있으며 신격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치욕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바울이 예루살렘 그리스도교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갖게 되고, 그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바울이 볼 때,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위한 순교자의 죽음에 머물 수 없었다. 그것은 더욱 심원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했다. 바울은 이러한 의미를 해석해내고자 시도하면서, 비록 무의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분명히 헬레니즘적 배경에 의존하게 되었다.
헬레니즘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 제의祭儀들과 비의秘儀 철학들이 풍부했다. 바울은 의식적으로는 그것들을 거짓 신에 대한 숭배, 또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단호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것들은 동시대 그리스·로마 사회의 열망과 공포를 반영하는 것으로, 당시 유포되었던 종교적 어휘들이 대부분 거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세계의 의식과 철학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전파했던 핵심적 개념은 ‘구원자로서의 신’과 ‘타락한 인간 상태’라는 두 가지 개념이었다. 구원자로서의 신 개념의 고전적 패턴은 고대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Osiris에게서 유래한 것이었다. 추종자들은, 오시리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제의를 통해 오시리스와 동화됨으로써 그들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영지주의Gnosticism로 분류할 수 있는 다양한 비의 철학들은, 모든 인간 존재가 육체의 감옥에 갖힌 불멸의 영혼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불행이 빚어진 것은, 빛과 행복의 낙원에 있던 영혼이 원죄로 인해 타락하고 물질의 속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음으로써 영혼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적 힘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파멸 상태에서 영혼은 그 본성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물질의 속박에서 해방됨으로써 영혼은 그 본향인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정통 유대교에 있어 이질적인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