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의 예는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날씨와 기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고, 전염병의 확산과 생태계, 인터넷, 그리고 바로 인간의 뇌가 복잡계에 해당한다. 복잡계의 특징적 현상은 “가능한 결과가 다양해서 결과적으로 선택하고 탐구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모든 복잡계의 공통적 특징은 그 구조에 어떠한 ‘외부적’ 조직 원리도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책임 본부, 호문쿨루스의 부재를 의미한다.
우리 인간은 행동에 대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맴돈다. 이 믿음은 떨쳐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고 압도적인 환상이다.
현실은 내가 뱀을 의식하기 (몇 밀리초) 전에 펄쩍 뛰었다는 것이다. 펄쩍 뛰어야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 후에 의식적으로 뛴 것이 아니다.
우리 뇌가 인과관계를 추론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뇌는 흩어진 사실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건을 설명하도록 만들어졌다. 내가 뱀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전에 펄쩍 뛰었다는 사실은 뇌가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의 좌뇌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실을 조금씩 날조한다. 이야기가 사실에서 너무 멀리 벗어날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우뇌가 개입하여 좌뇌에 제재를 가한다.
우리 선조들은 생명을 위협하거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느린 사람들은 자손을 번식할 만큼 오래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자연선택은 비의식적 과정을 계속 요구한다. 성공을 위한 이 티켓은 빠르고 자동적이다. 의식적 과정은 비싸다. 시간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기억력도 많이 필요하다. 반면에 비의식적 과정은 빠르고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분리뇌 환자 한 명에게 두 장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닭발이 그려진 그림은 오른쪽 시야에 보여주었다. 왼쪽 시야에는 눈이 내린 풍경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여러 장의 그림을 좌뇌와 우뇌가 모두 볼 수 있도록 펼쳐 놓고 한 장을 고르게 했다. 왼손을 삽을 가리켰고, 오른손은 닭을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왜 그 사진들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좌뇌 언어중추는 “아, 그건 간단해요. 닭발은 닭이랑 어울리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삽을 가리키고 있는 왼손을 내려다보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리고 닭장을 치우려면 삽이 필요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좌뇌는 왜 삽을 골랐는지도 모른 채 왼손의 반응을 관찰한 즉시 설명이 가능한 상황으로 끼워 넣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좌뇌가 “모르겠다”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좌뇌는 상황에 맞는 사후 대답을 만들어 냈다. 알고 있는 사실에서 단서를 찾아 납득이 되도록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좌뇌의 이 같은 과정을 해석기interpreter라 불렀다.
인간이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는 것도,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고 상황에 맞추려 하는 것도 모두 좌뇌 때문이다. 좌뇌는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앞에 두고도 세상의 구조에 대한 가설을 세우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때로는 가설을 세우는 데 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심리적 통일성은 우리의 지각, 기억, 행동,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 내는 ‘해석기’라는 전문화된 체계에서 창발한다.
인간의 해석기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렸다. 그것은 자아라는 환상을 만들고, 그와 함께 인간은 행위의 주체이며 ‘자유롭게’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