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어인 테크네로고스technelogos다. 고대 그리스 인은 테크네techne라는 단어를 예술, 솜씨, 기교, 심지어 영리함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썼다. 아마 창의성이라는 말이 가장 근접한 번역어일지도 모른다. 테크네는 어떤 상황에서 허를 찌르는 능력을 가리킬 때 쓰였고, 따라서 그것은 호메로스 같은 시인들의 가장 소중한 재능이었다. 오디세우스 왕은 테크네의 달인이었다. 비록 당대의 대다수 학자들처럼 플라톤도 테크네를 수공예품을 뜻하는 의미로 쓰곤 하면서 상스럽고 불결하고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플라톤은 실용 지식을 비난했기 때문에, 자신이 고안한 모든 지식의 정교한 분류 체계에서 공예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사실 고대 그리스 문헌 중에서 테크네로고스를 언급한 것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예외가 하나 있긴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보면, 테크네라는 단어가 로고스(logos, 단어나 말, 혹은 그것들을 활용하는 능력을 뜻하는)와 합쳐져서 테크네로고스라는 하나의 단어를 만든 최초의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글에서 테크네로고스라는 말을 네 번 언급하지만, 네 번 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썼는지 불분명하다. 그는 ‘단어 실력’을 말한 것일까, ‘기술에 관한 말하기’를 뜻한 것일까, 아니면 ‘공예에 관한 독해력’을 가리킨 것일까? 이렇게 잠깐 불가해하게 출현한 뒤, 기술이라는 용어는 본질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물론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인은 용접, 풀무, 돌립판, 열쇠를 발명했다. 그들의 제자인 로마 인은 둥근 천장, 수도관, 분유리, 시멘트, 하수도, 물방앗간을 발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와 그 뒤로 여러 세기 동안, 제조된 것들을 다 아우르는 총괄 용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별도의 주제로 논의된 적도 없고, 아예 깊이 생각한 적도 없는 듯했다. 따라서 고대 세계에서 기술은 인간의 마음속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뒤로 여러 세기 동안 학자들은 물건의 제작을 공예craft, 창의성의 발현을 예술art이라고 했다. 도구, 기계, 새 고안물이 널리 퍼짐에 따라, 그것들을 갖고 하는 일에 ‘유용 예술useful arts’라는 명칭이 붙었다. 채광, 직조, 금속 세공, 바느질 같은 유용 예술에는 도제 관계를 통해 전수되는 나름의 비밀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예술, 즉 제작자 각자의 고유한 특징이 담긴 것이었고, 그 용어는 공예와 재주라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뒤로 천 년 동안 예술과 기교는 서로 다른 개인적인 세계로 인식되었다. 이런 예술의 산물 하나하나는 쇠 울타리든 약초 배합법이든 간에 특정한 개인의 특정한 재주에서 나온 독특한 표현물이라고 여겨졌다. 만들어진 것은 모두 유일무이한 재능을 발휘한 작품이었다. 역사가 칼 미첨Carl Mitcham은 “전통적인 정신의 소유자에게 대량 생산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한다.
유럽 중세까지 영리함은 에너지의 새로운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두르러지게 발현되었다. 효율적인 말 목사리가 사회 전체에 파급되면서 경작 면적이 급증했고, 물방앗간과 풍차가 개량되면서 목재와 밀가루의 가공 속도가 빨라지고 배수 기능도 향상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풍요는 노예 없이 이룩한 것이었다. 기술사가인 린 화이트Lynn White는 이렇게 썼다. “중세 말기의 주된 영광은 성당이나 서사시나 스콜라 철학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땀 흘리는 노예나 하층 노동자의 등이 아니라 주로 인간 이외의 힘에 토대를 둔 복잡한 문명을 건설했다는 데 있었다.” 기계는 우리의 하층 노동자가 되고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사회를 전복한 몇 가지 혁명 가운데 하나였다. 기계 창조물은 농장과 집으로 침입했다. 하지만 이 침입은 여전히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1802년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요한 베크만Johann Beckmann이 상승일로에 있^는 힘에 이름을 붙였다. 베크만은 유용 예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이므로 그것에 ‘전체적인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축의 테크네, 화학의 테크네, 금속 세공, 석공, 제조를 구분하고서, 처음으로 이 지식 분야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의 통일된 교과 과정으로 종합했고, 잊힌 고대 그리스 어를 부활시키면서 『기술 입문서(Guide to Technology, 독일어로는 Technologie)』라는 교재를 펴냈다. 그는 자신이 개괄한 내용이 그 주제를 다룬 최초의 교양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은 바란 대로 아니 그 이상이 되었다. 우리가 할 것에 이름을 주었으니까. 이름이 붙자, 우리는 이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막상 그것을 보자 어떻게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베크만의 업적은 단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창조물들이 단지 무작위적 발명과 뛰어난 착상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이기도 했다. 기술 자체는 우리가 그것을 정화한 형태인 개인적 재능의 가장 무도회에 정신이 홀렸던 까닭에 오랫동안 알아차릴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베크만이 가면을 벗기자, 우리의 예술과 인공물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일관성 있는 통일체를 구성하는 상호 의존적인 요소들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각각의 새 발명은 앞선 발명들의 생존 능력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전기의 튀어나온 구리 신경이 없이는 기계 사이에 의사소통은 없다. 석탄이나 우라늄 광맥 채굴, 강의 댐 건설, 혹은 태양전지판을 만드는 희귀 금속 채굴 없이는 전기도 없다. 운송 수단의 순환이 없이는 공장의 신진대사도 없다. 잘라서 손잡이를 만들 톱이 없이는 망치도 없다. 망치 없는 손잡이는 톱날을 두드릴 수 없다. 시스템, 하위 시스템, 기계, 도관, 도로, 전선, 컨베이어 벨트, 자동차, 서버와 라우터, 코드, 계산기, 감지기, 아카이브, 액티베이터, 집합 기억, 발전기가 상호 연결된 지구 규모의 원형망, 상호 연결되고 상호 의존하는 부품들로 구성된 이 방대한 고안물은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조사하는 일에 나선 과학자들은 곧 특이한 점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대규모 기술 시스템은 때로 아주 원시적인 생물처럼 행동한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특히 전자 네트워크는 거의 생물 같은 행동을 보인다. 처음 온라인 세계를 경험할 때, 나는 전자우편을 보내면 네트워크가 그것을 조각으로 나눈 뒤 그 조각들을 둘 이상의 경로를 통해 최종 목적지로 보낸다는 것을 배웠다. 그 다중 경로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전체 네트워크의 트래픽에 따라 ‘출현했다.’ 사실 전자우편의 두 부분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경로를 취한 뒤에 마지막에 재조립될 수도 있다. 어떤 조각이 도중에 사라진다면, 도착할 때까지 다른 경로들을 통해 다시 보냈다. 나는 그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유기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개미탑에서 메시지가 보내지는 방식과 아주 흡사했다.
1994년 나는 기술적인 시스템이 자연의 계를 모방하기 시작하는 양상들을 길게 탐구한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서 나는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스스로를 촉매할 수 있는 합성 화학 물질을 예로 들었다. 더 나아가 세포처럼 자신을 조립할 수 있는 원시적인 로봇도 언급했다. 전력망 같은 크고 복잡한 여러 시스템들은 우리 몸이 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수선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너무 어려워서 사람이 짤 수 없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진화 원리를 이용하여 만들어 냈다. 즉 연구자들은 수천 줄의 코드를 짜는 대신에, 진화 시스템이 최상의 코드를 선택하고, 그것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덜떨어진 것을 죽이는 과정을 완벽하게 수행되는 코드가 나올 때까지 되풀이하도록 했다.
같은 시기에 생물학자들은 살아 있는 계가 연산 같은 기계적 과정의 추상적 본질로 충만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DNA(우리 창자에 흔한 대장균에서 발견된 실제 DNA)를 컴퓨터처럼, 어려운 수학 문제의 답을 계산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DNA를 작동하는 컴퓨터로 만들 수 있고, 작동하는 컴퓨터를 DNA처럼 진화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진 것과 태어난 것 사이에 어떤 등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기술과 생명은 어떤 근본적인 본질을 공유하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런 의문들을 놓고 고심하는 동안, 기술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최고 수준의 기술이 놀랍게도 물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환상적인 수준의 기술은 물질을 더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덜 이용함으로써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소프트웨어처럼, 최상의 기술 중에는 물질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발전이 새롭지는 않다. 역사상 위대한 발명품의 목록을 살펴보면 물질의 무게가 덜한 허깨비 같은 것들이 많이 있다. 달력, 알파벳, 나침반, 페니실린, 복식 부기, 미국 헌법, 피임약, 가축화, 숫자 0, 세균 이론, 레이저, 전기, 실리콘 칩 등등. 이런 발명품은 대부분 당신의 발가락 위에 떨어진다고 해도 다치지 않는다. 지금 이 탈물질화 과정이 가속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한 가지 놀라운 깨달음에 이르렀다.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든간에 그것의 본질은 DNA, 조직, 살 같은 물질 형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 형태에 담긴 만질 수 없는 에너지와 정보의 체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자라는 덮개가 벗겨지면서 기술의 핵심이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우리는 그 핵심에도 개념과 정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생명과 기술은 둘 다 비물질적인 정보의 흐름에 토대를 둔 듯하다.
그즈음 나는 어떤 종류의 힘이 기술을 관통해 흐르는지 더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정말로 그저 유령 같은 정보일까? 아니면 기술은 물질적인 것을 필요로 할까? 그것은 자연력일까 비자연적인 힘일까? 기술이 자연에 있는 생명을 연장한 것임은 분명했지만(적어도 내게는), 그것은 자연과 어떤 식으로 다를까?(컴퓨터와 DNA가 본질적인 공통점을 지니긴 하지만, 맥북과 해바라기는 같지 않다.) 또 기술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마음의 산물들(인공 지능 같은 인지적 산물까지 포함하여)은 어떤 범주에서 우리의 마음 자체와 다른 것일까? 기술은 인간적일까 비인간적일까?
우리는 기술이라고 말하면 반질반질 광택이 흐르는 도구와 장치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설령 기술이 소프트웨어처럼 비물질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할지라도, 우리는 그림, 문학, 음악, 춤, 시, 예술 전반을 이 범주에 포함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포함해야 한다. 유닉스에 저장된 천 줄의 문자를 기술이라는 범주에 넣는다면(웹페이지용 컴퓨터 코드로서), 영어로 적힌 천 줄의 문자(『햄릿』)도 기술에 포함해야 한다. 둘 다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사건들의 진행 경로를 바꾸고, 미래의 발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익스피어의 소네트나 바흐의 푸가도 구글의 검색 엔진이나 아이팟 같은 범주에 있다. 즉 그것들은 마음이 만든 유용한 것들이다. 우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만드는 데 쓰인 서로 겹치는 다양한 기술들을 낱낱이 분리할 수 없다. 독창적인 소설을 만드는 데 쓰인 문학적 기법도 환상적인 종족을 만드는 데 쓰인 디지털 기법과 똑같은 발명품이다. 둘 다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유용한 작품이다. 둘 다 관중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둘 다 기술적이다.
이 발명과 창작의 방대한 축적물을 그냥 문화culture라고 말하면 안 될까? 사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용법으로 쓸 때, 문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창안한 모든 기술에다가 그 발명의 산물들과 우리의 집단 마음이 만들어 낸 다른 모든 것들을 포함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라는 말을 국소적인 민족 문화가 아니라 인류 종의 전체 문화라는 의미로 쓴다면, 이 용어는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기술의 방대한 세계와 거의 같은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문화라는 용어는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부족하다. 그것은 너무 작다. 1802년 베크만이 기술이라는 용어를 붙일 때 알아차렸듯이, 우리가 창안한 것들은 일종의 자기 생성을 통해 다른 발명품들을 낳고 있다. 개별 기술technical art은 새로운 도구를 낳았고, 새 도구는 새 개별 기술을 낳았으며, 새 개별 기술은 다시 새 도구를 낳는 식으로 무한히 이어졌다. 인공물은 작동시키기도 몹시 복잡해지고 근원도 서로 몹시 뒤얽히면서 새로운 전체, 즉 기술이 되어 갔다.
문화라는 용어는 기술을 앞으로 밀어 대는 이 본질적인 자기 추진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기술이라는 용어도 그 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기술이라는 용어 역시 너무 작다. 기술도 ‘생명공학biotechnology’, ‘디지털 기술digital technology’, 석기시대 기술처럼 특정 방법과 기구를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쓰지 않는 단어를 창안하는 일을 싫어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알려져 있는 모든 용어들이 필요한 규모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좀 마지못해 우리 주변에서 요동치는 더 크고 세계적이며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계system of technology를 가리키는 단어를 창안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테크늄technium이라고 부르려 한다. 테크늄은 반질거리는 하드웨어를 넘어서 문화, 예술, 사회 제도, 모든 유형의 지적 산물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법, 철학 개념 같은 무형의 것들도 포함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더 많은 도구, 더 많은 기술 창안, 더 많은 자기 강화 연결을 부추기는, 우리 발명품들의 생성 충동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남들이 기술이라는 말을 복수형으로 쓰는 곳에서 테크늄이라는 용어를 하나의 전체 시스템(“기술을 촉진한다.”같은 사례에서)을 가리키는 의미로 쓸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라는 단어는 레이더나 플라스틱 종합체처럼 구체적인 기술을 가리키는 의미로 쓸 것이다. 예를 들어 “테크늄은 기술의 창안을 촉진한다.”같은 식이다. 다시 말해 기술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인 반면, 테크늄은 특허 제도 자체를 포함한다.
한 마디로 테크늄은 기계, 방법, 가공 과정 전체를 포괄하는 뜻을 지닌 독일어 테히닉technik과 비슷하다. 또 테크늄은 프랑스 어 명사인 테크니크technique와도 관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테크니크를 도구의 사회와 문화라는 뜻으로 썼다. 하지만 그 두 용어는 내가 테크늄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여기는 것을 포착하지 못한다. 즉 자기 강화적인 창조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말이다. 도구와 기계와 개념으로 이루어진 우리 시스템은 진화의 어느 시점에서 되먹임 고리들과 복잡한 상호작용이 너무나 빽빽해지면서 약간의 독립성을 낳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율성autonomy을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