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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질문, 우리는 어째서 선물을 주고받을까요?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무언가 기념일.
원하는 물건을 각자 알아서 사도 될텐데, 왠지 우리는 선물이라는 관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관습의 이유.
그 이유란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물건을 건네받는 순간, 그 물건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이라면 아무리 값비싸다 해도 어디까지나 ‘물건’이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친한 사람에게 생일 선물로 손목시계를 받았다고 해보죠. 그 시계가 어딘가 가게에서 내 돈으로 산 것이라면, 그 자체는 ‘물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시계가 아니라 누구나 대가를 치르면 구입할 수 있는, 교환 가능한 ‘상품’에 지나지 않죠.
그런데 그 손목시계가 ‘선물’로 전해진 순간,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가령 그 시계를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할까요?
선물을 준 상대방에게 사실을 숨긴 채 똑같은 시계를 자기 돈으로 구입해서 시치미 뚝 떼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끼거나 ‘왜 더 아끼지 않았을까.’라고 심하게 후회하거나 잃어버린 듯한 장소에 찾으러 가겠죠. 타인이 보면 ‘겨우 시계잖아? 엄청 비싼 것도 아니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몹시 충격적인 일입니다.
만약에 완전히 똑같은 시계를 몰래 구입해서 상대에게 사실을 숨기고 넘어간다면, 우리 중 대부분은 그 후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선물로 받은 시계도, 잃어버리고 내가 구입한 시계도, 물건으로서는 대등할 텐데 우리는 아무래도 똑같이 여기지 못합니다. 선물에는 물건으로서의 가치, 즉 상품 가치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있다고 무의식중에 느끼는 것이죠.
선물에는 상품 가치, 시장 가치에 담기지 않는 ‘잉여’가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잉여가 그저 상품이었던 손목시계에 유일무이한 성질, 다르게 말하면 고유성을 부여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잉여를 나 자신은 구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잉여는 누군가에게 받은 순간 비로소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순간, 그 물건은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증여란 바로 물건을 ‘물건이 아닌 것’으로 변화하는 창조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이 증여해주었을 때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셀프 선물’이라는 말이 공허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선물이란 본래 누군가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바로 증여입니다.
─ 지카우치 유타,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