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소녀가 친구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는 길을 설명한다.
울타리를 지나서 바다 반대편 고사목 쪽으로 와. 일렁이는 가는 물줄기가 보이면, 푸른 나무에 둘러싸일 때까지 상류로 올라와. 해가 지는 쪽으로 물길을 따라오면 평평하고 탁 트인 땅이 나오는데, 거기가 나의 집이야.
요즘에는 거리명과 번지수로 길을 찾아간다. 그것조차도 사람은 기계에 주소를 입력하는 수고만 하고 그다음부터는 기계만 주시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식이다. 그런데 그 기계 속 지도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공간을 보여줄 뿐, 내 곁에 도도히 살아 있는 시간을 담지는 못한다. 나무의 푸른색, 강의 소용돌이, 바람의 진동, 짐승의 맥박은 거기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소거해버렸다.
그러니 길을 일러주는 인디언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내게는 생경하고도 사랑스러운 시처럼 들린다. 울타리, 바다, 고사목, 상류, 평평한 땅이라는 시어와 그 사이의 징검돌들을 밟아 길을 찾아가는 이는, 친구의 집에 닿았을 즈음이면 시 한 편을 읽은 셈이다. 친구가 먼저 이 시를 읽었겠지, 라는 생각에 자신의 눈으로 한 번 친구의 눈으로 한 번 더 보다가 눈이 깊어져 버릴 것이다.
내가 당신이라는 목적지만을 찍어 단숨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소한 고단함과 아름다움을 거쳐 그것들의 총합이 당신을 만나게 하는 것. 그 내력을 가져보고 싶게 한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2020, 2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