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거냐고, 노인네도 아닌데 왜 자꾸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거냐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심리학의 ‘주둔군 이론’에 따르자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주둔군 이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습니다.
군인이 전투를 하다가 밀릴 때 통상 가장 어려운 전투를 치렀던 고지로 후퇴하는 건 그곳에 가장 많은 주둔군을 두고 왔기 때문이라 합니다. 인생에서도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는 반드시 그곳에 심리적 주둔군을 많이 남겨두게 되고,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건 따뜻한 볕이 들던 시절이 아니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떤 날일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