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은 일단 보류하고, 아직은 이해가 안 되지만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경의와 인내심을 갖고 메시지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음은 결코 신호로 바뀌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일도 시간을 함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을 때 흔히 발생하는 일이지만, 상대와 대화 중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철이 지나간다거나, 전철의 굉음으로 상대방의 얘기를 못 듣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요. 굴다리 밑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듣지 못했던 말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소리’로 보류해 놓습니다. 잠시 시간이 흘러 이야기의 맥락이 잡히면 ‘아, 그것이었구나’하고 알게 되지요. 일본말에는 동음이의어가 아주 많습니다. 이런 단어가 문장 앞에 있으면 문장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맨 앞의 주어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의미에서 시간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처음에 다가온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다음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는 식으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장의 마지막 말을 듣고 비로소 맨 앞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게 되지요. 전부 그렇습니다. 문장의 마지막 말도 맨 처음 말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문장의 마지막까지 듣고 나서 처음으로 되돌아가 맨 앞의 말의 의미를 확정하고 다시 문장 끝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시간 속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까지 가지 않으면 과거를 확정할 수 없고, 과거가 확정되지 않으면 미래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왕복하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 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민들레2013, 172~1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