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원짜리 밥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찾는 동네 복지관은 1980년대 달동네 시절에 생겼다. 처음에는 달동네 주민들에게 밥을 주다가 지역복지사업으로 커지며 복지관이 세워졌다. 30년이 흐른 지금 복지관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고 주영순 할머니와 이정성 할머니를 포함한 215명 노인이 다세대주택과 빌라에 세 들어 살며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 식사 한 끼 비용은 3500원. 서울 시민이 낸 세금을 서울시가 걷어 복지관에 나눠주면 복지관은 밥이나 즉석식품을 사 할머니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시민이 낸 세금 3500원은 온전히 다 밥과 국, 반찬으로 할머니들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돈으로 필요한 모든 제반 비용, 즉 전기세, 가스비, 음식을 포장하는 플라스틱 용기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나마 조리 시설이 있는 복지관은 여유가 좀 있죠. 주방조차 마련되지 않은 곳은 막막해요.” 할머니들의 자식보다 어리고 손주보다 나이가 많은 복지관 선생님들은 3500원이 떨어지면 모자란 돈을 후원금이나 기금으로 채운다. 일손이 부족하면 자원봉사자와 시가 지원하는 공공 근로자를 지원받아 충당한다.
한 끼 당 3500원은 서울시가 정한 ‘저소득 어르신 급식지원사업’의 기준이다. 몇 년 전부터 영양사 인건비로 한 달 180만 원씩 얹어줬다. 215개 복지관과 비영리 단체가 이 돈을 받아 경로 식당을 운영한다. 월곡동 복지관은 75만 2500원으로 어르신 215명 모두에게 식사 한 끼를 준다. “그래도 우리는 식당이 있어서 괜찮은 편이에요. 훨씬 더 열악한 곳이 많아요.”
가난한 할머니들은 가난한 복지관을 걱정한다.
(…)
할머니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3500원 식사를 받으려고 대기하던 다른 노인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 누군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이사 가거나 임종하지 않으면 빈자리가 나지 않는다. “한 어르신 앞에 대기자가 100명이 있다는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나라와 시와 복지관은 할머니들 주변에서 다양한 일을 한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시청의 ‘주임님’은 복지관 식당을 돌아다니며 후년 예산에 3500원보다 더 높은 숫자를 적어낸다. 복지관은 쌀독에서 쌀을 긁어 어버이날 줄 카네이션을 조화에서 생화로 바꿔본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어딘가에서 잘리곤 한다.
“담당하는 분도 어쩔 수가 없대요. 예산을 올리면 국회에서 다 잘린다고. 그래도 서울시의 3500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주는 것이에요. 시대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국회의원들도 3500원짜리 밥 한 번 먹어보면 좋겠어요.”
복지관 선생님들은 이름이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혹시나 할머니들의 밥값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했다. 우리는 그들의 의심이 어디서 오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할 이유를 대지 못했다.(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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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200개, 재래김 128봉, 즉석 카레3종류 35개, 즉석 짜장 8개, 검은콩두유 32팩, 라면4종류 108개, 사탕 5팩, 과자9종류 18팩. 이제 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카레가 먹고 싶을 때는 맵기를 고민하며 찬장 속의 제품을 살펴볼 것이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때도 빨간 국물 라면과 하얀 국물 라면, 짜장라면, 미역라면 중에 무엇을 먹을지 고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양이 중요할 것 같아서 처음에는 햇반 500개를 사려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이라면 식사 제공에 감사하지만 매일 똑같은 걸 먹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간 사치가 될 수 있는 물품을 이번에 드리면 어떨까 싶어 센터 입장에서 가격 부담 때문에 사기 어려운 간식이나 새로 나온 식품들을 구매했어요.”(237쪽)
― 권기석·양민철·방극렬·권민지,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 북콤마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