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들에게는 우리 인류가 기록하고 실험해온 시간보다도 훨씬 많은 방어 물질을 만들어낼 수단과 동기가 있었다. 곤충들은 또한 우리가 화학 무기를 그들에게 겨눌 때 위기에서 벗어날 번뜩이는 기지도 갖추고 있다. DDT유해성이 알려져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농약으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 편집자 주의 불길한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더 이상 새들이 노래하지 않고 대머리독수리가 하늘을 날지 않는 침묵의 봄을 떠올리게 된다. 모기와 모기가 옮기는 질병을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뿌렸을 때 인류가 겪어야 했던 진정한 실패는 모기가 너무나도 빨리 살충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1972년 미국 내 DDT 사용이 금지됐을 때 말라리아를 퍼트리는 모기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19종이 DDT에 내성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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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인간이 뿌리는 살충제에 내성을 갖고, 세균이 우리가 만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는 시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될 때도 있다. 언젠가 우리 집에 개미 박멸 통을 설치한 적이 있다. 박멸 통을 설치한 그해에는 분명 개미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 해, 개미들이 내가 설치해놓은 통을 피해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 고양이 먹이가 담긴 접시로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우리 지하실에 살면서 마음대로 번식하고 배설을 해대는 귀뚜라미는 또 어떻고? 매일 봄이면 남편은 귀뚜라미가 잘 다니는 통로나 은신처에 살충제를 뿌려댄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남편의 전략은 성공해 귀뚜라미를 구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봄부터는 전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귀뚜라미 놈들이 1950년대의 고전 SF 영화 「그놈들Them!」에 나오는 개미처럼 커져버리기까지 했다.
─ 나탈리 앤지어, 『원더풀 사이언스』, 김소정 옮김, 지호2010, 272~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