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합과 호흡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거실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고, 화면 속 이야기가 지루하다 싶으면 리모컨으로 금방 채널을 돌릴 수 있다. 그러니 TV 화면은 시청자들의 주의를 끊임없이 끌고 다음 장면을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캐릭터들의 ‘티키타카’가 이래서 중요하다.
반면 영화관의 관객들은 객석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이고, 그들 눈앞에는 커다란 스크린과 어둠뿐이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다소 여유가 있고, 걸출한 감독은 길고 느리고 조용한 롱테이크도 밀어붙일 수 있다. 대신 영화는 드라마보다 플롯이나 설정, 세트, 미술이 훨씬 더 정교해야 한단다. ‘이거 가짜다’라는 생각이 한번 머리에 떠오르면 관객이 다시 화면에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이런 사항들을 배우면서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감독도 드라마 PD도 이반 카라마조프의 장광설을 영상에 담으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핵심이 그 장광설이다. 영화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문학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보여주기가 아니라 말하기가 소설의 진짜 힘이고, 소설이야말로 사유와 사변을 담는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상업계 관계자들을 만난 뒤로 나는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길게 웅변을 하거나 한 문제를 골똘히 고민하는 장면을 집어넣는 것을 더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의 소설 쓰기는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유유히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