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이번에는 삶이라는 글자와 작은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의 고장에서 가장 작은 물건을 가리키는 형용사가 좁쌀과 담배씨인데, 돌가지씨가 담배씨만큼 작아요. 올 봄에 돌가지씨를 뿌리며 깨달았습니다. 씨는 작아야 뿌리기도 묻기도 간수하기도 쉽겠다고. 그래서 씨는 이렇게 작게 생겨났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씨가 좀 굵은 율무, 콩, 땅콩은 심어 놓으면 짐승들이 파먹기도 하는데 작은 씨는 짐승들이 건드리지도 못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데 어떻게 건드릴 수 있어요? 낙락장송으로 자라는 솔씨는 쌀의 오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고, 몇 백 년을 살고 아름드리로 큰 느티나무의 씨는 이파리 뒤편에 붙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씨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고 묻기 쉬우며 땅에도 별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나무도 어린 묘목을 심어야 살기도 잘 삽니다. 큰 나무는 옮기기도 심기도 힘들고 살리기도 힘듭니다. 옮겨 심는 큰 나무는 몇 해 몸살을 앓다가 겨우 살아나거나 말라 죽기 일쑤입니다.
스님, 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 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사람은 지치고, 이론은 사람들의 등과 다리에서 시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심어 기르고 키울 수 있을 만큼 작고 작은 교리와 이론이어야 사람 사이에 씨로 뿌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가 땅에 묻혀 싹을 틔우듯, 사람의 인격과 삶의 일부도 딴 사람에게 묻혀야 한다고 여깁니다.
―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현암사2017, 8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