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로 어리석음은 귀 기울이지 못함을 뜻한다. ‘어리석음ab-surdity’에서 핵심 단어인 ‘surd’는 수학적 불합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라틴어 surdus귀먹거나 벙어리인에서 왔고, 또 이것은 ‘귀먹은 뿌리’를 의미하는 jadr asamm을 번역한 말이며, 이것은 다시 ‘벙어리의 혹은 비합리적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logos를 번역한 말이다. 이런 어원의 거미줄 속에 숨어 있는 가정은, 눈이 멀거나 팔이 없거나 코가 없는 사람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청력을 잃은 사람은 중요한 끈이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여서 삶의 논리의 궤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땅속에 묻힌 뿌리처럼, 세상의 일상적 교류에서 차단된다. 키츠는 “귀에 들리는 멜로디는 달콤하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더욱 달콤하여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차라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세계의 노래, 소음과 말을 듣고자 한다. 소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두텁게 하고, 우리는 소리에 기대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며, 세계와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우주공간은 고요하지만 지구상에 있는 것은 거의 모두가 소리 낼 줄 안다. 어느 커플에게나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몇 소절의 멜로디만으로도 애틀랜타의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달콤한 추억이 떠오르거나, 중서부 도시의 푹푹 찌는 여름밤, 마른 잎을 태우듯 시간을 불태우며 맥줏집 앞의 차 안에 앉아 있던 십 대 시절이 생각난다. 엄마는 자장가를 부르며 아기를 안고 흔들어준다. 아기가 잘 수 있도록 노래의 요람을 깔아주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행동하게 만든다. 시민권을 찾기 위한 행진이나 기금 모금 콘서트, 정치적 시위, 우드스톡과 같은 대중 집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동요나 군가는 긴 행진이나 반복되는 일을 덜 지루하게 해준다.
─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2023, 303~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