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의 세계화는 우리 집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송도와 안산만큼 차이가 났다. 나는 중진국과 선진국을 넘나드는 한국에서 태어나, 운이 좋아 충분한 교육을 받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으로 나가서 외국인 노동자 겸 박사과정생이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했다면 등록금과 생활비를 조달하기 어려웠겠지만, 미국에서는 둘 다 지원을 해준 덕에 비교적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흑발 언니는 개발도상국인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으로 왔고,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였으므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자수성가하여 베트남 친정을 크게 일으켰다. 언니의 가족이 줄줄이 한국으로 왔고,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잡았다. 언니가 처음 봤던 2000년대 초반처럼 처음에는 입보다 손이 필요한 일을 하다가, 점점 더 입이 필요한 일로 옮겨갔다. 어느 날 언니의 베트남 집 사진을 보게 되었다. 튼튼한 벽돌로 지어진 집이었다. 한눈에 봐도 다른 집들과는 달랐다. 언니의 한국 생활의 한순간 한순간이, 저 집의 벽돌 하나하나가 되었구나.
양극단의 세계화는 언어 교육에서도 그대로 일어난다. 결혼이주여성은 다문화가정센터나 주민센터를 통해 한국어 교실에 등록한다. 보통 무료로 수업을 듣거나 아주 적은 돈을 낸다. 여기에 쓰는 교재는 주로 “여보, 양말은 어디에 있어요?” “서랍 안에 있어요.”처럼 남편을 내조하기 위한 내용을 다룬다.여성가족부, 2005 반면 유학생들은 대학의 한국어학당을 다닌다. 등록금은 백만 원 내외다. 여기에서 쓰는 교재는 한국 젊은 세대의 연애, 케이팝, ‘힙’한 관광지 등을 다룬다. 이 둘의 간격이 쉬이 좁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결혼이주여성은 비자 문제가 해결된 이들이지만, 체류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한국어 교실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세계화는 끝과 끝에서 일어나고, 언어 간의 간격도 어쩌면 그렇게 계속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 김미소, 『언어가 삶이 될 때』, 한겨레출판2022 ,19~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