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에는 산문적인 이유가 있다
수평선을 번갈아 건너뛰며 줄넘기 놀이를 하는 해와 달. 황급히 다락에 숨겨놓은 구름.
나를 힘껏 나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배.
내 숨이 밀어놓은 그릇처럼
배.
식탁에
차려져 있다. 차릴 수 없는
말.
저녁에 대해서라면,
바다에 둥둥 떠가는 푸른 식탁보처럼 말하자. 사랑에 대해서라면, 거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로
말하고
꿈에 대해서라면,
급식실에서, 먼저 먹은 아이가 기다리는 짝꿍의 식판처럼 어지러운 해초밭을 지나
인어들의 마을에 가서
나는 학교를 열고 싶다. 지직대는 형광등이 작은 거품을 만드는 물속의 교실에서
지금은 작문 시간, 원고지를 나눠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 칸에 한 자씩 문을 열고 글자들을 내보내자. 빨간 칸은
바다의 격자무늬, 창문 같은 것.
졸업식처럼?
그래, 졸업식처럼 나란히 송가와 답가를 부르고 우리는 우리가 아닌 곳으로 가자.
이별에 대해서라면,
물속에서는 눈물이 흐른다고 쓰지 않는다, 섞인다고 써야 한다.
가르치며,
파도는 발 없는 인어들의 발자국이었구나, 배우며 손을 흔들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라면,
식탁에 놓인 수저통은 꼭 관뚜껑 같아.
숟가락은 시체 같지.
먼바다에서부터 창문이 밤의 못을 하나씩 뽑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이가 국밥을 말며 말했다.
배고픔이 늘 죽음을 이긴다,
고.
인어들 떠난 바다는 식탁보처럼 고요했다.
배.
누군가 빈 상여에 불을 붙여 밀고 있었다.
― 신용목,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문학동네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