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피에르 바야르가 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제1장의 제목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다. 피에르 바야르는 책이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로베르토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사서를 예로 들면서 ‘책을 읽지 않아 생기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덜기 위해’ 썼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특성 없는 남자』의 그 사서는 “무식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책들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일부러 어떤 책도 읽지 않도록 주의한다”라고 말해 나를 경악하게 만든 아주 특이한 남자다.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관리하는 모든 책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로 읽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 먹은 사람이며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으니, 평생을 도서관 사서로 일한 사람들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도 남을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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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야르는 우리에게 독서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독서란 정말 책을 읽기만 하는 행위일까?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요약하는 것만이 독서일까? 피에르 바야르는 독서에 관한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다. 진정한 독서란 책과 책, 책과 독자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에 제한을 두지 않고 총체적인 지식 지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진정한 독서를 통해서라면 우리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슬프게도 책은 당연히 읽어야 할 것에서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독서는 유행이 아니다. 유행은커녕 완전히 망했다. 한 교수가 대학교 수업시간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나중에 리포트에 ‘책을 읽느냐 마느냐는 자유니까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적어내는 학생도 있었다던가.
― 심혜경,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더퀘스트2022, 169~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