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머니 얘기를 왜 하냐면, 어머니는 성경을 여러 번 읽으셨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의 기준에서 봤을 때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사셨어요. 그런데 한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어내신 거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자기 삶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삶과 유리된 글은 누구도 쉽게 읽을 수가 없거든요. 제게 법학자가 쓴 논문을 주고 읽으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할 것이고, 못 읽어내는 부분도 많을 거예요. 텍스트라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평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고, 훈련을 받으면 모두가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삶과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죠. 어떤 텍스트로 평가를 하느냐는 권력의 문제예요. 우리 어머니에게는 그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거죠. 내가 원하는 내 삶의 텍스트를 써내고, 읽어내고, 평가받을 수 있는 권력이 없는 거예요. 시험도 그렇고, 교육제도도 그렇고, 보편성과 일반성을 추구하는 과학이라는 체계 또한 그런 권력을 용인하지 않거든요.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평가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에요. 그런데 지식은 과학적으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내러티브적으로 구성되는 영역도 분명 있거든요. 삶의 내러티브, 시쳇말로 하면 삶의 지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 자기 삶에 대한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이해, 이런 것을 평가하지는 않아요. 그런 식으로 보면, 어머니는 텍스트 중심의 문해력, 과학 중심의 리터러시, 제도가 ‘용인’하는 리터러시의 변방에 있는 거죠.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