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녀는 신문을 두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왜?
여소녀는 그것이 몹시 궁금했는데, 계획자들도 그것을 자신만큼 궁금하게 여길지 다시 궁금했다. 여소녀가 생각하기로는 세운世運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엔 세계의 기운이 이미 모여 있었다. 미래와 빤하게 연결된 현재, 이상에 이르지 못하는 실재, 비대하고 멋대가리 없는 외형, 시대의 돌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알아서 먹고살며 시대를 이루었고 이제 시대의 뒤꽁무니에 남은 사람들, 아 사기꾼들, 여소녀 자신을 비롯한 거짓말쟁이들, 그것도 조그맣고 하찮은 스케일의 사기밖에 칠 줄 몰라 여전히 보통 사람으로 여기 남은, 내 이웃들…… 최소한 이 공간에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는 펼쳐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들이 각자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여행은 몇 번을 가보았는지를 알아보고 가족도 다 만나고 그들의 자녀는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직업을 얻었는지, 그중에 비정규직은 몇 퍼센트인지까지도 다 알아봐야 했다. 그 이야기들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이 거대한 상가의 내벽과 외벽을 몽땅 덮어버려야 했다.
(중략)
내가 이 상가와 사십년간 맥을 함께한 인간인데 내게 질문하나 해오지 않는 프로젝트는, 됐다고 여소녀는 생각했다. 담배를 피우며 구조물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상징이라고 여소녀는 생각했다. 뜬금없고 남의 일 같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상징하는 바가 있었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번 것을 비롯해 도시의 이름으로 계획되는 프로젝트는 여소녀에겐 음모이자 꿍꿍이일 뿐이었다. 공적 기관의 예산이 책정되고 집행되는 프로젝트일 뿐. 나와는 무관한. 어디까지나 내가 소외된 상태로 전개되는. 언제나와 같이. 그 상징물엔 여소녀라는 맥락이 없었다. 564호와 568호, 531호, 540호, 536호의 맥락도 없었다. 그들은 그 맥락을 몰랐다. 그러니 남의 마당에 서낭당 같은 것을 만들어두는 것 아닌가…… 귀신을 쫓듯. 내가 귀신이여?
- 황정은, <디디의 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