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요? 저도 그걸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눈뜨고 보니 제가 다른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이전에도 채무자. 지금도 채무자. 예나 지금이나 빚을 진 사람이라는 건 똑같은데. 좀더 나쁜 채무자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언니, 저는 언니와 헤어진 뒤 여러가지 일을 하며 학창 시절을 아슬아슬하게 마쳤어요. 사회 초년생인 제겐 여전히 천만 원가량의 학자금 대출이 쌓여 있었지만, 취직만 되면 언제든 갚을 수 있을 거라 낙관했어요. 그런데 그 구직이란 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어요. 불문과 출신에다 나이도 많고, 여자인데다 용모도 그저 그런 저를 뽑아주는 데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집안이 휘청거리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사고를 냈다기보단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복잡한 종류의 문제였지요. 한 날 아버지 친구가 아버지 화물 트럭을 빌려 몰고 나간 모양인데, 그길로 다른 승용차 석 대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나 봐요. 유명을 달리하신 분은 그 밖에도 한 분이 더 계셨고, 다친 사람은 더 많았다고 하고요. 그 일로 원래부터 여유가 없었던 우리 집은 더 이상 복구가 안 될 정도로 폭삭 주저앉고 말았어요. 집안에 닥친 불운의 자장이 너무 강해, 잘못 하다간 나까지 빨려들어 갈 것 같아 돕고 싶기보단 도망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죠. 안 그래도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던 차에, 집주인은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더군요. 모아둔 '알바'비는 진작 바닥났고, 은행에선 매일 독촉 전화가 오고.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케이크가 들어 있지 않은 케이크 상자'를 보내고픈 심정이었어요. 제 동기 중 누가 그런 식으로 경기도에 있는 사립중학교에 들어갔단 얘기를 들은 뒤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근처에 일이 있어 왔는데 얼굴이라도 잠깐 보자는 거였죠. 헤어진 지 3년만의 일이었어요.
-김애란,「서른」,『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298~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