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 날이었다. 성소수자 친구가 행사장 안에 있던 내게 황급히 문자를 보냈다. “반동성애 시위대를 피해서 들어갈 방법이 있을까?” “없어. 무슨 일인데?” 그는 잠시 후 행사장에 들어와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말했다. “눈 감고 뛰어들어 왔어. 시위대의 팻말을 보면 토할 것 같아서.” 표정이 심각했다. 괜한 말 같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일로 교류해온 친구였지만 그가 평소 겪어온 고통이 무엇인지 그제서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활동하는 성소수자 운동가다. 그런 그가 그깟 시위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덜덜 떨어야 하다니…….
혐오표현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과연 실체가 없는 고통일까? 개인의 특수한 고통일 뿐일까?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과연 존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소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범죄가 정신병자의 소행이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면 “나다니지 못하게 해라”, “병원에 가둬라”는 식의 댓글이 수없이 달린다. 그 댓글을 본 어느 정신장애인의 반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불쾌한 정도가 아니고……. (말 멈춤) 억울하고, 내가 그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들고요……. 숨고 싶고 음……. 또 죽고 싶어요. 이렇게 범죄…… 정신장애인의 범죄가 이토록 많은 세상이라면 내가 이 땅에서 누구한테 인정받겠나. 차라리 죽고 말지. 정신병원 안도 감옥이고 바깥세상도 감옥이죠. 옛날에 간첩 관리하듯이 정신장애인을 관리하는 식이 되어버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