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헤르만이 규정한 공연 개념은 막스 라인하르트가 실제 공연을 통해 보여준 것만큼 급진적이거나 혹은 훨씬 더 급진적인지도 모른다. 헤르만은 육체에 대한 초점을 표현과 특정 의미의 매개체이자 기호로서의 육체에서 ‘실제적 육체’로 옮겼다. 즉 기호적 위상에서 물질적 위상으로 중심을 옮긴 것이다. 비평가들이 배우는 자신의 육체를 통해 텍스트에 주어진 의미를 표현하고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전제한 반면 ─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공연보다 우선시했다 ─ 헤르만은 재현, 즉 무대 위에서 형상화되는 허구적 세계에 대한 질문이나 배우들의 외적 현상이나 움직임에 따라 해석 가능한 의미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질문이나 문제 제기는 당대의 연극 비평가나 문학가에게 중요한 기준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공연의 기호적 관점만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헤르만은 ─ 주디스 버틀러와 마찬가지로 ─ 표현과 행위를 상호 배제하는 대립적 개념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가 전개한 공연 개념은 다음과 같은 독해를 하게 한다. 헤르만은 행위자와 관객의 신체적 공동 현존과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연, 그리고 그들의 육체적 행위를 가장 본질적 정의로 강조하면서, 그러한 역동적인 과정에서 표현이나 주어진 고정된 의미 전달을 배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떠오르는 의미는 우선적으로 그 과정 안에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데, 헤르만은 이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의 특수한 기호성semiotizität과 그 특수한 의미 생성 방법에 대한 연구는 헤르만이 공연 개념을 규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았다.
헤르만이 공연을 ‘축제’와 ‘놀이’로, 배우와 관객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파악하면서 공연의 특수한 물질성을 인공물이 아닌 순간적이며 역동적인 과정을 보았다면, 그는 ‘작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근거를 잃는다. 당시에는 예술을 주로 작품 개념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록 헤르만이 연극을 독립적인 예술로 인정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를 “연극을 만들고 이루게 하는” “본질적인” 것이자 “순수한 예술”로 파악했더라도 말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헤르만의 공연 개념은 작품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공연의 예술성 ─ 즉 미학성Ästhetizität ─ 은 작품에 근거해서 생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수행되는 사건Ereignis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헤르만이 설명하는 것처럼, 공연에서는 일회적이고 반복될 수 없는, 대부분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치거나 조정 가능한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상황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단 한 번 일어난다. 만약 한 무리의 행위자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다양한 기분, 기대, 생각, 지식을 지닌 특정 수의 방문자들 앞에 서게 된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 헤르만은 무엇보다 이 두 그룹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위, 행동성, 역동적 과정에 관심을 나타낸다.(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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