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 제37조 제2항)
국가는 언제나 선인가?
‘국가’ 하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어떤 세상이 떠오르십니까? 고등학교 때 사회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국민·영토·주권이란 이른바 국가의 3요소가 생각날 것이고, 그보다 더 공부를 잘한 사람이라면 로크나 루소의 ‘사회계약론’ 같은 정치사상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법이란 어떤 형태로든 국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법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가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적습니다. 국가가 국민·영토·주권이라고 하는 형식적 요소로 구성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기원이 어떻게 되고,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국가라는 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정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국가 발생에 관해서는 가족설, 계약설, 실력설 등이 주장되고 국가의 본질에 관해서는 일원설, 이원설, 다원설 등 꽤나 그럴듯한 이론들이 넘쳐나지만 그 어느 것도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대표적 헌법학자인 김철수 교수의 경우, “이와 같이 국가의 본질에 관하여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국가의 지역 사회성, 국가의 인적 조직성, 국가의 통치 조직성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가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정확히 국가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우리가 거기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만큼 황당한 논리도 없습니다.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경Edmund Hilary, 1919~2008이야 ‘단순히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험난한 산을 오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가 거기 있기 때문에 나도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를 사랑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가에 대한 ‘사랑 표현’을 강제할 수는 없으며, 국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 역시 국가의 기원, 본질, 목적 등등에 관해 독창적 이론을 만들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그걸 규명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등과 관련된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저는 ‘왜 국가는 자꾸만 신의 자리를 넘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습니다. 국가와 신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상관이 있습니다. 충성 서약은 기본적으로 종교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군인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은 것은 종교 제의의 일부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는 절대자인 신뿐입니다. 절대자는 불변하는 속성을 지닙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존재는 절대적일 수 없고, 그런 가변적 존재에 대한 충성 서약은 자신의 운명을 가변적 존재의 의사에 맡기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이 정당하려면, 그 국가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그 선함이 변할 수 없는 것임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신에 대한 충성 서약은 신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인 정의임을 인정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국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법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국가가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면 사실 법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절대선인 국가가 명하는 대로 우리가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법에 의한 지배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 김두식, 『헌법의 풍경』, 교양인, 2011, 117~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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