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성서조선』지 창간사
하루아침에 명성이 세상에 자자함을 깨어 본 바이런은 행복스러운 자이었다. 마는 하루저녁에 ‘아무런대도 조선인이로구나!’ 하고 연락선 갑판을 발구른 자는 둔한 자이었다.
나는 학창에 있어 학욕에 탐취하였을 때에 종종 자긍하였다. ‘학문엔 국경이 없다’고. 장엄한 회당 안에서 열화 같은 설교를 경청할 때에 나는 감사하기가 비일비재이었다. ‘사해가 형제 동포라’고 단순히 신수信受하고, 에도江戸 성의 내외에 양심에 충忠하고 나라를 애愛함에 절실한 소수자가 제2국민의 훈도薰陶에 망식몰두亡息沒頭함을 목도할 때에 나의 계획은 원대에 이르려 함이 있었다. ‘옳은 일을 하는데야 누가 시비하랴?’고. 과연 학적學的 야심에는 국경이 보이지 않았다. 애적愛的 충동에는 사해가 흉중의 것이었다. 이상의 실현에 이르러는 전도에 다만 양양할 뿐이었다. 때에 들리는 일성一聲은 무엇인고? ‘아무리 한대도 너는 조선인이다!’
아! 어찌 이보다 더 무량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는 구句가 달리 있으랴. 이를 해解하여 만사휴萬事休요, 이를 해하여 만사성萬事成이로다. 이에 시선은 초점에 합合함을 얻었고 대상은 하나임이 명확하여지도다. 우리는 감히 조선을 사랑한다고 대언大言치 못하나 조선과 자아와의 관계에 대하여 겨우 ‘무엇’을 지득知得함이 있는 줄 믿노라. 그 지만遲晩함이야 어찌 남의 웃음을 대待하리오만.
그러나 자아를 위하여 무엇을 행行하고 조선을 위하여 무엇을 계計할꼬. 오직 비분개세悲憤慨世만이 능사일까. 근일 우리 형제들 사이에 그 평소의 사상이 상반相反하고 경일頃日의 취향이 각이各異함에 불구하고 각기 자아를 굽히고 동일의 표적을 향하려는 경향이 보임은 우리의 공하恭賀할 바거니와 이는 실로 친거親去 후에 효성이 동動함과 일리一理이니 우리 불효자인들 어찌 그 예例에 빠지랴. 경우는 기적을 행하는가 보다.
다만 동일한 최애最愛에 대하여서도 그 표시의 양식이 각이함은 부득이 한 세勢이라. 우리는 다소의 경험과 확신으로써 오늘의 조선에 줄 바 최진최절崔珍崔切의 선물은 신기치도 않은 구신약성서 한 권이 있는 줄 알 뿐이로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一軌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東京 시외 스기나미촌杉並村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基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講하면서 지내온 지 반세여半歲餘에 누가 동의動議하여 어간於間의 소원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도다. 명명命名의 우열과 시기의 적부適否는 우리의 불문不問하는 바라. 다만 우리 염두의 전폭全幅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 두 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진最珍의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 둘 중 하나를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기원祈願은 이를 통하여 열애의 순정을 전하려 하고 지성至誠의 선물을 그녀에게 드려야 함이로다.
『성서조선』아,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 신자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인外人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所持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성서조선』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 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 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상론相論하라. 동지同志를 한 세기 후에 기期한들 무엇을 탄할손가. (1927년 7월)
─ 김교신, 『김교신 전집 1: 인생론』, 노평구 엮음, 부키, 2001, 19~21면
조와弔蛙*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이다.
이 반상般上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大變事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起動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透明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여!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작은 담수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1942년 3월)
*조와: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함.
─ 김교신, 『김교신 전집 1: 인생론』, 노평구 엮음, 부키, 2001, 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