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있어서나 의도에 있어서 명백히 범죄적인 명령을 받았을 때 병사들이 그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관한 아이히만의 모호한 생각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경찰 심문에서였다. 이때 그는 갑자기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칸트의 도덕 교훈, 그중에서도 특히 칸트의 의무에 대한 정의를 따르며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터무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칸트의 도덕철학은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인간의 판단 능력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심문관은 이 점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라베 판사는 호기심에서였는지 아니면 아이히만이 감히 칸트의 이름을 자신의 범죄와 연관해서 들먹인 것에 분개해서였는지 피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아이히만은 정언명령에 대한 거의 정확한 정의를 내놓았다. “칸트에 관한 제 언급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언제나 일반적인 법률의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질문에 그는 자기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유태인 청소라는 최종 해결책을 수행할 임무를 부여받은 순간부터 자신은 칸트의 원칙대로 사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자신은 ‘자기 행위의 주인’이 아닐뿐더러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했노라고 말했다. 그가 법정에서 다 설명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표현처럼 ‘국가에 의해 범죄가 합법화된 시대’에는 칸트의 정식이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그저 그 정식을 기각하고 다음과 같이 왜곡해서 읽었다는 점이다. 즉 네 행위의 원칙이 이 땅의 입법자의 행위의 원칙과 동일한 것처럼 행위하라. 다시 말해 “만일 총통이 너의 행위를 안다면 승인할 그런 방식으로 행위하라.”
그 후로 다음과 같은 아이히만의 최종진술이 있었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희망은 사라졌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음에도 법정은 자신을 믿지 않았다. 자신은 유태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법정은 믿지 않았다. 자신의 죄는 복종의 죄뿐이며 복종은 미덕으로 칭송되었고 그 미덕은 나치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자신은 집권 세력의 일원이 아니라 희생자였고 지도자들만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다.” 아이히만은 그렇게 말했다.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그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대신해 고통 받아야 한다는 그의 깊은 확신이 있었다. 이틀 후인 1961년 12월 15일 금요일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