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열정은 망각하기 위한 열정이 아니다. 진정한 열정은 불행한 환경에 의해서 파괴된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의 하나다. 어린아이들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낀다. 아이들이 눈으로 보면 세상은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쉬지 않고 열심히 탐구한다. 물론 아이들이 추구하는 지식은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을 끄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다. 동물들은 장성한 후에도 건강하기만 하면 열정을 유지한다. 낯선 방에 들어간 고양이는 어디선가 쥐 냄새가 나지 않을까 구석구석 냄새를 맡아보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다. 사람은 극단적인 좌절에 빠지지 않는 한 외부 세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지할 것이며, 흥미를 유지하는 한은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자유가 필요하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열정을 잃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자유에 대한 제한이다. 미개인들은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한다. 이런 모습은 직접적인 충동에 순종하는 것이다.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일하러 나서는 사람들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충동에 의해서 움직인다.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경우, 충동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는 직접적으로 행사되지 않고, 이론이나 신념, 결단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행사된다. 막 출근길에 나선 사람은 방금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다. 그러나 그는 배가 고파질 것을 알고 있고, 직장에 나가는 것은 앞으로 맞게 될 허기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충동은 불규칙한데, 문명사회의 습관은 규칙적이다.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집단적인 활동조차도 자연스럽고 충동적이다. 부족이 전쟁에 나설 때면 북소리를 울려서 전의를 불러일으킨다. 현대의 활동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몇 시 몇 분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을 때 조잡한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역무원이나 기관사, 신호수의 활동 욕구가 치솟을 리가 없다. 이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동기는 간접적이다. 그들은 그런 활동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충동도 느끼지 못하고, 그 활동의 최종적인 대가에 대해서만 충동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회적인 활동은 이와 동일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인 활동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라, 협동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최종적인 이득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